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이영순 Feb 06. 2024

오지랖이 넓어서

오지랖 넓은 것도 병이다

   얼마 전에 사 온 소쿠리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 물건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김장철에는 더러 이웃끼리 빌려 쓰기도 하는 물건이지만 지금은 김장철도 아닌 데다 그리고 이만한 소쿠리 한 두 개쯤은 갖춰 놓고 사는 이웃들인지라 없어진 물건의 행방이 가늠되지 않았다. 

  기웃기웃 앞집 옆집의 담을 넘어다보다가 마침 수돗가에서 푸성귀를 손질 중인 뒷집아주머니께 “집 나와 떠돌아다니는 파란 소쿠리를 혹시 못 보셨어요.”하고 물어보았다. 

  “그거 버리는 게 아니었어?”

뒷집 아주머니는 소쿠리의 행방을 안다는 듯 말을 받았다.

 “산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버리기는요.”

 “그럼 그렇지 도둑 x 같으니라고 남의 물건 훔쳐가면서 큰소리까지 치더라고”

 아주머니는 물증을 잡고도 놓쳐버린 소쿠리도둑에 대해 억울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다. 


  아주머니 말씀에 의하면 며칠 전 낯선 여자가 우리 집안을 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의 행동이 수상쩍어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여자는 마치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듯 태연하게 소쿠리와 대야를 들고 나와 손수레에 싣더라는 것이다. 

왜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냐는 아주머니와,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는 낯선 여자와의 실랑이는 뒷집 아주머니의 참패로 끝났다고 한다. 여자는 대놓고 도둑 취급하는 뒷집아주머니께 되레 오지랖 운운하며 궁금하면 주인 여자한테나 물어보라고 하면서 그 물건들을 싣고 유유히 가버렸단다. 

 

  주인여자한테 물어보라 했다고? 

내가 아무렴 산지 며칠 되지도 않은 물건을 버렸을라고. 

그리고 사실 그 소쿠리는 가격보다는 큰 부피 때문에 성가셔하며 사들고 온 물건이었다. 

대체 누굴까. 한참을 생각 끝에 퍼뜩 한 사람이 떠올랐다.  

  달포 전쯤인가 분리수거 한 물건들을 내다 놓는데 저만큼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분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동네를 돌며 폐지를 주워가는 할머니인가 싶어 막상 불러놓고 보니 낯선 분이었다. 

어차피 버리는 물건인데 사람을 가려가며 준다 안 준다 할 수도 없고 하여 할머님께 드리려고 모아 두었던 폐지까지 꺼내서 손수레에 실어 보냈다. 

분명 손수레가 저만치 가는 모습을 보고 들어왔는데 이내 그분이 다시 돌아와서는 나를 언제 보았다고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바쁜 시늉을 하며 어서 가보시라고 하자 요즘은 폐지 줍는 것도 경쟁이라며 버릴 물건들을 여기

‘이 자리’에 모아 두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분이 콕 집어 가리킨 ‘여기 이’ 자리는 우리 집에서 햇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대문 안쪽이었다. 

괜한 친절을 보였구나 싶었지만 마음 같지 않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대야와 소쿠리를 쓰고는 물 빠짐을 시킨다고 그분과 나와 교집합 같은 ‘여기 이’ 장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기대 놓았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집 앞을 지나치다가 냉큼 집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멀쩡한 물건을 왜 가져갔느냐고 따질 수가 없다. 그랬다가 혹여 ‘네가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삿대질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 내 오지랖 넓음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니 옷섶을 다시 여미 듯 

대문을 닫아걸고 사라진 소쿠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도 오지랖 때문에 난감한 경우를 당한 일이 있었다. 회사일로 여의도 직장에서 마포 쪽으로 잠깐 외근을 나왔다가 웬 할머니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반백의 할머니는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집을 찾아 달라고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사는 곳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근처 파출소에는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를 간신히 파출소까지 모시고 가기는 했지만 더 묘한 상황이 파출소 안에서 벌어졌다. 

할머니는 제발 자신을 여기 혼자 두고 가지 말라며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나는 할머니를 유기하려 하는 못된 손녀가 되어 버렸다. 파출소 안의 직원들도 그러지 말고 그냥 집으로 모시고 가라며 농 섞인 말로 실실거렸다. 

  행여 놓칠 새라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던 할머니가 혹시 밖으로 나가 있으면 생각이 날지도 모르니 일단 파출소에서 나가자고 했다. 나는 괜한 신상정보만 파출소에 남기고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도로의 경계석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 잘 생각해 보셔요. 이쪽 오른쪽으로 강이 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강을 건너오셨는지 어쩌셨는지 그걸 잘 생각해 보셔요.”


  “모르겠어. 잠깐 졸다가 깨어보니 여기야.”


  할머니는 방향감각까지 잃은 상태였다. 해는 어느새 빌딩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데 이러다가 파출소 직원의 말대로 처음 보는 할머니를 자취방으로 모시고 가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닐지. 넋을 놓고 앉아서 오가는 버스의 노선도를 흥얼거리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광명시!’라고 불쑥 내뱉었다.  

  광명시를 실마리로 잡은 할머니는 이내 기억을 되살려 냈다. 종점까지 가는 차만 타면 집이 바로 그 근처이니 찾아갈 수 있다는 할머니께 기억을 되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할머니를 앞세워 광명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강을 건너고 영등포로 접어들자 할머니는‘맞다, 맞다’하면서 스치는 풍경들이 낯익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끔씩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서울 시청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즐기셨는데 오늘은 그만 깜빡 졸다가 당황하여 내리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었다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버스가 종점에 다다르자 할머니는 저기 저 집이 우리 집이라며 불이 환하게 켜진 집을 가리켰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몇 걸음 뒤에서 따라 걷는 나를 일순 귀찮은 사람 대하듯, 아들이 알면 또 야단이 날 것이니 어서 썩 돌아가라고 손사래 쳤다.  

  내 오지랖은 이미도 스무몇 살 그때부터 폭을 넓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수레를 끌던 그분이 제발 뒷집아주머니의 눈에 띄지 않아야 될 텐데. 


작가의 이전글 밥부터 먹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