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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이영순 Jan 21. 2024

지하철에서

풍경 둘

풍경 하나    


지하철 환승역에서 힘에 부치는 짐을 양손 가득 들고 가는 할머니에게 잠깐 친절을 보였더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다본다. 

순간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움찔해서 멋쩍게 웃어 보였다. 

갈아타는 길목까지 바래다 드리고는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하는데 머뭇머뭇하시던 할머니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설마 이 짐을 목적지까지 들어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할머니는 아예 쪼그리고 앉아 짐 꾸러미를 풀기 시작한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혹여나랑 짐을 나누어 들 심산으로 짐 보따리를 나누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핑계를 대고 거절하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풀어헤친 짐 속에서 작은 아이스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꼼꼼하게 붙여놓은 노란 테이프를 살살 뜯어내고 할머니가 꺼낸 물건은 뜻밖에도 고깔 아이스크림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무엇이라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줄 것이 이것밖에 없다며 극구 받기를 재촉했다.  

  뜻밖의 사례(?)를 받고 난처해진 건 오히려 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자서 뭘 먹는다는 것도 요령부득이었지만 손에 쥐어주신 아이스크림 또한 이미 몸이 말랑말랑한 상태로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사코 거절을 해 보았지만 할머니의 짐 보따리는 벌써 동여매여지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둥을 마주하고 

서서 이미 녹아내린 아이스콘의 포장을 벗겼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 뒷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는 나중 걱정이고 우선은 이 물건을 먹어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입가며 손바닥까지 타고 내리는 아이스콘의 끈끈한 느낌과 내 목덜미에 와 박히는 뭇시선이 범벅되어 뭘 먹는지조차 느낄 새도 없이 손에 것을 해치웠다. 생전 아이스콘 하나도 못 먹어본 여인처럼. 

  물티슈를 꺼내 입가를 여미는 내 모습을 빙그레 웃음으로 지켜보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사래를 

쳤다. 꿩 구워 먹은 자리처럼 바닥의 얼룩까지 말끔히 지우고 돌아서 오는데 그제야 달콤한 딸기향이 입 안 

가득 번져왔다.   



풍경 둘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 옆 자리에 앳된 아가씨 둘이 조곤조곤 정담을 나누고 있다. 할머니 머리가 자꾸 아가씨 어깨를 뚝뚝 건드린다. 그런데 전혀 귀찮아하는 표정 없이 되레 자신의 어깨를 할머니 쪽으로 

살짝 밀어 넣는다. 참 따뜻한 정경이다. 친할머니나 되는가 보다. 

  아가씨 어깨에 머리를 기대인 할머니 안정되게 졸고 있다. 함께 있던 아가씨는 뭐가 그리 웃어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연신 웃는다. 몇 정류장이나 갔을까.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건드리며 

“할머니 저희 여기서 내려야 해요”

놀란 할머니께서 매무새를 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아가씨들 총총히 사라지고 할머니 꿈에서 깬 듯 멍한 시선으로 하시는 말씀

 “아이고 참 별일이네. 생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꽃향기에 취해 깜빡 졸았구먼.” 

  변명도 참 그럴듯하게 하시는 할머니. 

하긴 나 같았어도 저리 고운 아가씨가 어깨를 내어준다면 잠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가씨들이 떠난 자리에 훈훈한 꽃향기가 오래도록 남아 저들을 키운 부모들의 뒷모습까지도 함께 머물게 했다. 

아뿔싸 그 아가씨들이 내리는 역에서 나도 내렸어야 했는데 나도 꽃향기에 취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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