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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Jun 19. 2024

선녀님, 억울하지 않으세요?

의도치 않은 경력단절은 정말 사절!

어린 시절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싫어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이해도 안되고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야기가 바로 '선녀와 나무꾼'이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결말은 버전이 여럿이라지만) 아무 죄 없는 선녀가 사슴과 나무꾼의 농간으로 날개옷을 빼앗긴 채 지상에 남게 되고, 반강제로 나무꾼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살다 겨우 날개옷을 되찾아 승천하는 것이니까요. 옷이 날개이고 날개가 옷인 한 여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선녀로서의 역할과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로 볼 수 밖에 없기에, 그 억울함과 답답함이 어린 저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달까요.

 

직장인으로 살고 있고, 살아야 하며,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선녀와 나무꾼'은 어쩌면 무시무시한 ‘경력단절’의 고전적 사례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력단절이 길어지면 질수록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 그만큼 요원해지고, 통상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복귀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꽤 과거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 역시 다른 이유로 잠깐 일을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길지 않은 그 몇 달이 저는 지옥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좋든 싫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결코 원하지 않던 '비정상적 쉼'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사회적 소속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제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일없이 지나가는 시간이란 솔직히 버거웠습니다. 며칠이든 몇 달을 쉬든 그 다음의 일정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면 불안한 마음이야 덜 했겠지만, 그마저도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매일 안개 속 헤치듯 길을 찾아야 하는 고단함도 저를 힘들게 한 또다른 요인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은 가중되고, 혹시 여기서 낙오하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에 짓눌렸습니다. 다행히 지인의 추천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그 때 저와 제 가족이 겪은 힘들었던 기억은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 일에 있어서 분명한 ‘Next’ 없이는 무언가를 쉽게 결정하지 않는 조심성이 생겼습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그 경험은 저를 되돌아보게 한 귀하다면 귀한 경험이었겠지만, 비자발적 경력단절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임엔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위안 혹은 희망이 되는 건,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저나 주변 동료들이 오랜 시간 살아 오면서 마주한 결과이기에 이것만은 조금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경력이 잠깐 단절되었다고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공포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돌아보니, 어쨌거나 주어진 시간을 더욱 값지게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단절을 말그래도 단절로 끝나지 않도록, 일종의 '숨고르기' 시간으로 자신에게 충분한 휴식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고,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스스로의 역량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재정의해보거나, 아예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의 ‘날개옷’이 도둑 맞지 않도록 늘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물론, 꼭 '플랜B'도 함께 생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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