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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률 Jan 03. 2024

[영화 리뷰] 스즈메의 문단속(2023)

 재난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와 모든 걸 바꾼다. "다녀올게"를 마지막 인사로 남긴 수많은 삶들은 허물어짐을 피할 수 없고, 형체를 잃어버린 것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력이란 완전치 못하고, 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난들은 앞선 기억들을 순차적으로 밀어낸다. 그 끝에는 "이제 그만 잊고 나아가야지"라는 말이 미덕이자 위로가 되는 미래가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 미래로 향하는 출구 대신에, 뒤에 재앙이 우글거리는 입구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그리고 그 문을 잠그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재난에 의해 스러져간 삶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큐슈의 고등학생 스즈메(하라 나노카)가 재앙이 현실로 넘어오는 문을 볼 수 있는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와 함께 떠나는 문단속 여행기다. 이처럼 영화는 운석이 마을 위로 떨어지는 <너의 이름은.>이나, 빗물이 도시를 삼키는 <날씨의 아이>와 달리 재난의 '진앙지'로 달려가 전력으로 문을 닫겠다는 실천적 태도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상세히 묘사된 지진의 양상은 트라우마를 겪는 재난 피해자에 대한 미흡한 고려로 읽히고 치유와 위로라는 대의 아래 장애물 없이 상승하기만 하는 남녀 간의 멜로는 세카이계 장르를 고민 없이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감정의 힘을 맹신하는 듯한 어리숙함을 이번에도 모른 척한다. 이처럼 영화는 군데군데 흠이 선명하지만 그럼에도 빈틈을 애써 메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신카이 마코토는 이전까지의 작품이 도움닫기였다는 듯 세계관과 스펙터클을 과감히 확장하고 그 성취의 표면 위로 자신의 인장을 찍은 광휘를 덧입혔다. 전작보다 절제된 음악은 매너리즘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큐슈에서 간사이와 도쿄를 지나 도호쿠로 스즈메를 올려보내면서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상처를 기억하고 보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 표현의 결과물은 감독의 전작에 대한 기시감 아래 변주와 답습 사이를 오가는 듯 보이지만, 더 아름답고 도덕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쏟아온 이같은 노력에는 언제나 진심이 묻어난다. 나는 이 진심이 좋다. 그리고 이 진심의 자장 안에서 영화의 장점은 이례적으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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