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in Sep 19. 2021

판단유보주의

독립출판물 <식물계 (Plantae)>  수록

본 글은 독립출판물 <식물계 Plantae> 에 수록되었습니다. 

정녕 저 기형적인 줄기가 내 정체성인가?
매만지려 가만히 손 뻗을래도 가시가 돋혀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를테면 사랑의 형태란, 햇빛...? 혹은 물, 흙...?
처럼 받아야마땅한 무엇일까? 
글쎄, 어쩌면 뿌리를 화분에 가두고 울타리에 가뒀을지 모른다. 
우리 세상 무결한 모성애의 형태처럼. 

볕이 드는 곳에서 꿈을 꾸라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비대하든 왜소하든. 

그늘에 있는 소외자들에게 바치는 볕이 드는 방향으로 꿈을 꿀 자격.

바로 자유. 


<식물계 Plantae>는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을 주제로 작성한 단편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잃었습니다. 사회에서 규정된 '정상성'에 도달하기 위해 재단되고, 구겨졌습니다. 맹목적인 삶 속에서 감정은 메말라갔고, 희망은 무채색이 되었습니다. 

<식물계 Plantae> 를 통해 사람들이 잊고 있던 '자유'를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작지만 강한 감정의 이끌림을 통해 '나의 자유'를 발견하고, '타인의 자유'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가려진 두 눈을 뜨고 나와 주변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각자가 꿈꾸는 이상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나의 자유가 독특하고 괴이할 수 있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저 아름다울 뿐, 누구에게도 무해할 테니까요. 각자의 품에 안은 자유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26개의 식물들과 그 꽃말들로 자유 식물계를 엮어냈습니다. 


"당신의 자유는 어떤 식물인가요?"


- 프로젝트 자유 아트 x 콘텐츠 팀 


저는 프로젝트 자유의 일원으로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자유에 대한 단편 에세이를 작성해 기고하였습니다. 


독립출판물 <식물계 Plantae> 를 만든 '프로젝트 자유' 팀은 20대 사회, 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여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혐오에 맞서 각자의 '자유'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화하고 연대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창작자들은 언택트 시대 속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영화*연극 융합창작물과 글, 그림, 영상 등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즉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알리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

프로젝트 자유의 그간의 활동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instagram.com/projectjayu


해당 글이 수록된 책 <식물계 Plantae> 의 더 상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tumblbug.com/plantae_projectjayu?ref=discover





나는 이상한 세계에 산다.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아무도 모르게 정의해놓은 세계. 명백하게 그것들이 아무것도 정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무해 혹은 그 이상을 꼬박 넘기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상한 세계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정의에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우겨넣고 담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또 그 정의가 나에게 혹은 세계의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다 상처를 마주한 시점에 한번쯤 내가 또 이상한 세계에 속았구나, 하고 마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절대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속임수같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비슷한 세 단어가 가장 그 세계에서 불가사의라고 전해지는데, 바로 삶과 사람과 사랑이다. ㅅ과 ㄹ과 ㅁ과 ㅇ이 모인 모양새가 마치 그 단어들에 쌓인 정의와 비슷해 보인다. 알 수 없이 복잡하게 내면에 차곡 차곡 쌓인 삶이라는 글자의 모양과 삶을 길게 늘려보았을 때 결국 안에 남는 요소로 존재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둥그런 마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랑. 하지만 이 셋 무엇도 함부로 정의하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절대 그럴 수 없는,  ‘무언가'이다. 그 어디에도 ‘이런' 삶이란, ‘이런’ 사람이란, ‘이런'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이 이상한 세계에 사는 각자의 삶과 사람과 사랑이 있을 뿐. 


그리하여 이 글은 잠시나마 내멋대로 나의 사랑을 보편적 사랑이라는 없는 개념을 빌려 정의하고 다른이의 사랑이라는 세계를 침범한 것에 대한 사과문이자 반성문이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사랑을 쫓아가려 했던 과거에 대한 사과문, 또 언젠가 내가 정의한 사랑에 뒷면을 보지 못한채 이상한 세계를 보편적인 세계라 안일하게 판단할 것을 대비해 앞서 성찰하는 미래를 향한 반성문이다. 삶이 언제나처럼 알 수 없는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과정일 뿐인 것 처럼, 사랑 또한 완결된 지점이나 정의할만한 것이 못된다. 그저 정해지지 않은 둥그럼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삶이란 글자가 가장 모낳게 보이듯이 이상한 세계 속 우리는 혼자 존재할 때 우리의 모난 모양새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모든 것이 안으로만 향해있으니까. 누군가와 혹은 어떤 세계와 만나 봉합될 때 그 모남이 조금씩 어그러지기도 하고 모남이 모여 조금씩 다양한 각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데, 이는 결국 사랑에 대해 오해스런 정의를 내리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는 모든 과정이 둥그러지는 과정일 것이다. 그 일직선의 과정에 다 깨달은 것처럼, 사랑은 무조건 이래야 하는 것처럼 결론의 점을 찍거나 뒤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고, 함부로 둥그런 마음을 향한 과정에서 하차할 수 없다. 그렇게 사람과 함께 삶 속에서 부단히 사랑을 배워나가야만 한다. 그런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지금의 이곳에서 그때의 그곳으로 보낸다.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나요, 사랑이란 자유였나요, 사랑 없이 자유로울 수 있나요. 

그때의 그곳에서 지금의 이곳으로 보낸다. 

-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정의내릴 수 없습니다. 애쓰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 모든 이야기도 다 틀렸다. 확실한 것은 없다. 

-사랑에게 자신의 이름표를 붙이지 마세요. 정해지지 않은 자유입니다. 


주의: 그 어느 것 하나도 판단하거나 예단하지 말 것. 유보하며 나아갈 것. 




*

해당 에세이북은 해방촌 스토리지 북앤 필름, 별책부록, 아인서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https://byeolcheck.kr/product/d2a61616-8110-42a4-93a6-c036dd3f27ec


작가의 이전글 바람처럼 살아갈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