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 미술관, '프로필을 설정하세요'
모든 트렌드가 메타버스를 주목한다. 마케팅과 산업 트렌드가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고 일제히 가르키고 있다. 하지만 그와중에 혹자는 메타버스가 2000년대 초반의 ‘세컨드 라이프' 혹은 90년대 생이 즐겨하던 ‘퍼피레드' 게임과 다를게 뭐냐며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를 디지털과 고도화된 그래픽 기술로 그대로 반영해 인간이 활동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메타버스의 태생을 지켜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디어가 전통매체인 신문과 라디오를 벗어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시각매체로 반등하면서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인식하고 사는 세계가 현실인지, 미디어가 반영하는 세계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 매체가 보여주는 다양한 콘텐츠들은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고, 그것들은 우리의 새로운 생활세계로 녹아든다.
이러한 점을 납득하고 나면 메타버스의 등장과 발전은 이제 더이상 혁신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세계를 방대하게 구축할 수 있는 게임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 속의 우리의 캐릭터들이 활동할 세계관이 창조된 세계관이 아닌, 현실과 똑닮은 세계관이면 그것이 메타버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메타버스를 체득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흥행은 그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인지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 C의 국제 기획전 <프로필을 설정하세요> 는 미디어를 떼놓고는 절대 어떠한 생활도 불가능한 현대인의 모습을 한 번 더 매체 철학적 관점과 예술적 관점으로 관조하게 만드는 전시다. 2020년도 상반기부터 미디어에서 강조된 ‘부캐' 열풍은 이제 더이상 열풍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활동할 세계가 확장되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전시는 ‘부캐'를 한번 더 ‘프로필'로 확장한다. 게임, SNS, 혹은 메타버스 등 현실 세계를 제외하고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우리의 활동 세계에서 우리는 언제든 ‘프로필'이라는 나의 가면을 설정해야 한다. 전시를 보고나면 ‘프로필을 설정하세요' 라는 당연한 문구가 ‘활동할 세계가 한번 더 확장되었습니다.’ 라는 말로 들리게 될 것이다.
현실 세계를 파악하고, 살아가는 것도 힘이 겨운 현대 시대에, 또 다른 세계가 부여됐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필을 설정하세요' 라는 주문을 받아들였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숙고와 고민을 부여하게 되는, 진중한 의미가 담기게 된다. 프로필은 ‘나' 로 치환되고, ‘나'라는 존재를 새로 ‘설정'한다는 행위는 세계에 존재가 부여된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를 선택하고 편집할 수 있는 주체 감각을 새롭게 형성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프로필을 설정하세요’ 가 나를 감추는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본 전시는 최근 10년여 년간의 ‘멀티 페르소나 (다중 정체성) 현상'과 이를 탐구하는 동시대 국내외 작가들의 시선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거시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전시의 특성 상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신선한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대거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먼저, 예술적 가상 페르소나를 앞세워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에 눈에 띈다. <사람은 싫지만 너는 사랑해, I hate people but I love you, 2017>를 선보인 아지아오는 중국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블로거, 활동가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쉬 웬카이의 가상 페르소나이다. 쉬 웬카이는 ‘아지아오' 라는 가상 AI를 내세워 활동하고 있다. 2020년 하반기, AI 캐릭터를 각각의 멤버로 인정하여 메타버스 세계관을 들고 나선 아이돌 ‘에스파'가 주목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AI 캐릭터 멤버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이들은 ae 로 불린다.) 가 낯설고 기괴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예술 씬에서는 이미 진행되었던 수순이었다. 순수예술만 하며 살기에는 활동할 공간이 너무 많은 현대 시대에는 이런 가상 페르소나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에스파의 ae는 이러한 현상을 대중문화에 접목하고 등장시키는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된다.
반면 <그 누구도 아닌 나, No Body But Me, 2019>를 선보인 라터보 아베돈 (LaTurbo Avedon) 은 전시 프로그램 북에서 작가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아바타'라고 써져있을 뿐이다. 라터보 아베돈은 익명의 작가가 만든 아바타 아티스트로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오직 온라인 공간에서만 작품을 창작하며 활동한다. 물리적 이동 대신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를 이동하며 시공간에 맞는 새로운 신체를 렌더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영상은 20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Actor & Avatar 컨퍼런스'에 참여한 작가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이다. 철저하게 모든 행사에서 현실세계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바타로 활동한다. 해당 프레젠테이션 영상에는 자신의 작업 철학과 온라인 전시의 사례, 앞으로의 목표들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물론, 아바타의 신체와 목소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존재자체가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작품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술과 가상의 차원을 통해 ‘굴절 reflection’ 이라 부르는 정체성의 다양성과 다면성을 탐구하는 여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물론 그가 작업한 작품들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풀어가겠지만, 가상의 아바타를 통해 프레젠테이션하는 그 순간에 그의 존재자체가 이미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 혹은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예술적 가상 페르소나를 내세워 존재 자체로 하나의 예술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이러한 작가들이 더욱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공간'을 실험한 작가도 눈에 띈다. 한국의 안가영은 <KIN거운 생활: 온라인>을 통해 온라인 게임 메타버스인 브아일챗 VRChat 환경으로 이주한 세 예술가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 참여한 세 예술가는 게임을 통해 새로운 페르소나를 부여받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무차별적 복제와 기술에 적응하는 과정, 디지털 세계 속에서의 폭력 등 기술 발전의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세 예술가들의 게임 참여 과정 자체를 상영하며 예술가의 입장에서 온라인 세계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미래로 지목되는 가상세계, 메타버스에 집중하기보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미디어 매체 자체가 가상 세계라고 인지하지도 못할만큼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인터넷, 유튜브, 혹은 재생산되는 모든 콘텐츠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담은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매체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이러한 과정을 작품을 통해 그대로 반영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한국의 김효재가 선ㅂ오인 <디폴트 Default>와 <썰 Ssul>은 작품을 위해 탄생한 인플루언서 김나라가 등장하는 현대 유튜브 문법을 그대로 적용했고, 무제한으로 복제되어 실제와 허구가 구분되지 않은 스토리를 담은 비디오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가상과 현실, 실제와 허구, 국가 간의 경계 사이에서 부유하는 디폴트 값인 우리의 자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과연 어디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의 뉴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불리는 미국의 몰리소다는 방 전체를 뒤 덮은 이미지, 영상, GIF 등을 통해 현실 속에서 내내 콘텐츠를 고민하고, 이윽고 현실에 살지만 유튜브를 위해 사는 여성의 이미지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인터넷과 사적인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전제하고 각자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지, 부캐 전성시대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역으로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발점을 제공한다.
<프로필을 설정하세요>는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에 위치한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씨에서 2021년 11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그리고 오후 4시에 정규 전시 해설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21년 미술 주간에 맞추어 10월 7일부터 10월 16일까지 연계 프로그램인 ‘셀피가 예술이 될 때' 를 진행하니 참고 바란다.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고 선보일 수 있는 확장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기 자신을 편집하고 설정한 일종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프로필이 주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미디어 세계를 살아가고 직면해야할지 답을 찾고 고민해보고 싶다면 전시 <프로필을 설정하세요>를 추천한다.
* 본 글은 10월 아트렉처 아티클로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