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새 Apr 19. 2024

독자 없는 글쓰기의 즐거움

목적 없는 SNS란 불가능한 것일까?

요즘 SNS를 하나쯤 안 하는 사람은 없다. 블로그 종류만도 여러 가지다.

내가 글을 쓰는 채널은 브런치를 비롯해 네이버 블로그, velog 정도가 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각 블로그에 목적을 가진 순간부터 글을 업로드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포스타입, 브런치... 영상으로는 유튜브나 틱톡까지. 수많은 SNS가 개개인의 프레젠테이션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무언가 나의 것을 드러낸다던지 내가 무슨 일을 한다던지를 SNS를 활용해 꾸준히 기록하고 쌓아나간다. 예전에는 그냥 일기나 쓰고 내가 먹은 거나 올리고 친구들끼리 소통할 때 썼던 것 같은데 이젠 그렇게 하면 '비효율적으로 SNS를 한다.', '잘못 관리하고 있다.'의 평가가 신경 쓰이는 시대가 되었다.


그냥 여행 사진을 올리는 게 아니라 여행 정보를 같이 써서 남들이 나의 글을 검색해서 보도록 해야 하고, 그냥 그린 그림 아카이빙을 하기 위해 올리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작업하는 요령은 뭔지, 과정은 어떤지를 청자를 의식한 포맷으로 올려야만 할 것 같다. 이왕 SNS를 시작했다면 팔로워도 있으면 좋겠고, 방문자 수도 많았으면 좋겠고, 부가적으로 수입도 창출해 주면 좋겠다. 성행하는 여러 SNS 관련 강의들은 그 수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있다 보면 SNS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괜한 낭비 같다는 생각을 하는 시점이 찾아오게 된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일기장으로 썼다.


서로이웃으로 친구랑 놀았던 시간들을 오로지 주관적인 감상 위주로 기록했다. 그러다 애드포스트를 달고 일 방문자 수를 신경 쓰며 일상 속에서 리뷰 가능한 것들을 정보성 글로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카페에 다녀온 날의 이야기는 일기가 아닌 텀블러 리뷰 글이 되었다. 여행 다녀온 날의 사진 아카이빙 대신 다녀왔던 맛집들을 시리즈로 포스팅했다. 마이리얼트립 마케팅 파트너 활동을 위한 서비스 리뷰, 소개 포스팅도 서너 개 올렸다. 그리고 그때를 기점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더 이상 열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블로그를 제대로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 과정에서 이게 더 이상 나의 생각이나 즐거움을 표출하는 수단이 아닌 오로지 보여지기 위한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슨 글을 쓰든 나의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 즐거움의 기준이라는 것이 온전히 글을 쓰는 작업이 아닌 이 글에 달린 좋아요 수나 조회수 따위에 좌지우지되어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초에 SNS란 무엇일까?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그러니까 타인과 교류하기 위한 목적의 서비스이다. 당연히 이걸 어떻게 쓰든지 상관없다. 그 범위가 친한 친구들 뿐이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포스팅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SNS를 영리하게 사용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을 포스팅하는 건 정말이지 대단하고 힘든 일이다. 자기 PR의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SNS라는데, 이걸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떻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친구들이랑 소소하게 이야기하는 SNS도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이왕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일기를 쓸 거라면 이게 좀 더 큰 의미를 가져다주면 좋겠다는 것은 어쩌며 당연한 수순의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기에, 나는 오히려 독자 없는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일기 쓰기를 숙제로 하고 검사받던 우리들은 일기장에 글을 쓸 때도 남이 보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이제는 내 일기장에 도장을 찍고 한 줄 감상을 적어줄 선생님도 없는데, 내가 나의 독자가 되어 어디에도 보여주면 안 될 내밀한 글을 안 써 버릇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독자 없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내 일기는 나만 읽으니 당연히 나는 나의 단 하나뿐인 독자이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의식해선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부러 말할 필요도 없는 지나가는 고민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적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것은 머릿속을 유랑하는 무언가를 현실에 내어 놓는 일이다. 생각과, 말과, 글은 다르다. 마치 기체와 액체와 고체 같다. 뒤로 갈수록 더 선명해야 하고, 확실해야 하고, 정확해야만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생각들은 더 내어놓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나 스스로도 떠올리기 싫은 것을 떠올려야 할 때도 있고 답도 없는 생각들이 더더욱 많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는 것들도 있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것들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한다. 이거 해볼까? 아 저거 재밌겠다. 그때 왜 속상했지... 요즘 왜 이렇게 지치지?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을 혼잣말로 되뇌어도 알 수 있는 것은 크게 없으니 이것을 글로 잡아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실체가 생긴다. 그제야 비로소, 내 생각들을 명확히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실체가 생긴 나를 마주하는 일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즐겁다.



머리에 힘을 빼고 글을 써보자.


글의 끝에 다다라 고백하자면 오늘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혼자 글을 쓸 때처럼 힘을 빼기 위함이었다.

요즈음 콘텐츠 발행을 쉬면서 혼자 노트에 손으로 글들을 적어 내려갔는데, 소모되던 이전의 글쓰기들과 달리 적어내려가면 적어낼수록 나의 무언가가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유랑하는지 모르겠는 매일매일 속에서 단 한순간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때 생각했다. 남들을 위한 글도. 좋지만, 나를 위한 글을 가장 많이 써야 한다고.


그러니 모두 메모장을 켜보자. 노트를 펼쳐도 좋다. SNS가 아닌 나만 볼 수 있는 그 어느 곳이면 다 좋다. 잠시 머리에 힘을 빼고, 드는 생각들을 모두 손가락의 끝에 맡겨보자. 필터링 과정은 없다. 나의 뇌에 손가락이 바로 연결된 양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텍스트를 그대로 출력해 보자. 그리고 다시 읽어보자. 뭔지도 모르겠던 것들 속에서 무언가 보이게 될 것이다. 그걸 모으고, 정리하고, 다듬어서 조금 더 말이 되는 줄글로 적어보자. 구조화를 해보자. 그럼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댓글을 달고, 또 댓글을 달고. 나와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보자. 그 시작을, 독자 없는 글쓰기로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