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든든한 남편을 만난 것도 향남이고, 지금 우리의 삶을 책임져줄 남편 공장도 향남이니 어찌 보면 이곳과의 인연은 내가 알지 못한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30년 전 나는 이곳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친정집이 성남이라 성남 집 근처에 있던 대웅제약에 입사했다. 1년쯤 다녔을까 집과 가까워 선택했는데 때아닌 공장 이전 관련으로 원치 않던 향남으로 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 한참 향남에 제약 단지가 형성되면서 제약회사들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직장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1년 만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잃고 나니 갈까 말까 몇 번 망설였지만 선택은 하나였다. 그때만 해도 대웅제약 관리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향남에서의 기숙생활을 택했고 주말이면 집을 갔다가 월요일 아침 일찍 친정집에서 출근했다. 한동안은 사원들을 위해 성남에서 향남까지 버스 운행을 해주었기에 친정집에서 다녀도 되었지만, 나의 또 다른 선택에 나름의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향남 대웅제약을 다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대웅제약 안에 있는 대웅 의료기를 다녔다. 면밀히 따지면 다른 회사지만 사내 연애 같은 연애를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만남을 갖기 전에는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함께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처럼 복식탁구를 쳤으니 그사이 알게 모르게 어떤 감정이 흘렀을까.
3년쯤 함께했던 시간들 사이로 남편은 빼곡히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여자들의 수다보다 남자들의 말 없는 힘의 대결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나면 향하는 곳이 앉아서 얘기하고 수다 떠는 곳이 아닌, 대리님 과장님을 비롯한 남자들이 대다수인 탁구장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우리 팀 선임 언니들이 좋아해 줄 대상은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대웅 의료기가 대웅제약으로 이사 온 이후 매일 보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팀들이 보였다 그중에 남편도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 같은 느낌에 말도 섞지 않고 같은 공간 다른 팀으로 따로 탁구를 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복식 합류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을까?
땀 흘리며 함께하는 운동은 그게 무엇이든 무장 해제를 시키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때만 해도 탁구를 꽤 잘 쳤던 모양이다. 남자들 복식팀에 그것도 여자를 끼워줄 리 만무하건만, 게임 내기 복식을 했을 정도니 못 봐줄 실력은 아니었을 거다. 그것도 다른 팀 대리님과 나, 대웅 의료기 팀 이런 조합으로 복식탁구를 치는 것도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긴 생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위아래 치마 유니폼에 구두를 신고 탁구를 친 내 모습은 다시 생각해 봐도 웃프다. 아마도 많이 봐주고 쳤겠지만, 그래도 복식팀으로서 한몫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 시절 탁구를 치면서 치마에 구두를 신고 쳤으니..
그때의 나의 열정에 매력을 느꼈으려나.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남편은 나에게 대시를 했고 나는 나의 이상형이 아니라는 말로 몇 번의 거절 의사를 했지만, 인연은 이상형을 만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사내 연애를 하고 있었다.
2년쯤 사귀었던 그는 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맡을 정도로 교회에 열정이 남다른 그였다. 딱 교회 오빠 같은.
나는 교회에 열중하는 그에게 늘 불만이었고 그도 그런 자기를 이해 못 해주는 내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남편의 관심이 시작되었다.
그때의 내 마음은 싫다고 하면서도 어딘가 마음을 두고픈 도피처가 어쩌면 필요했던 모양이다.
시작하는 과정에 몇 번의 작은 실랑이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생각보다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양쪽 집안에 인사를 드렸고 6개월 만에 함께 동고를 시작하고 얼마 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인연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헤어진 그도 내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3년 후쯤 교회에서 3년 연상인 선도사를 만나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젊은 시절 시간을 함께 보낸 스쳐 지나간 만남도 각자의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향남에서의 추억을 소환하니 30년 전의 기억까지 소환을 하게 된다.
향남은 그런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사람은 회귀 본능이 있다고 했던가.
30년 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오게 됐던 이곳이다.
30년이 흐른 지금은 나의 선택에 의해 다시 와서 2년을 지냈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살던 수원으로 이사를 간다.
30년 전과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낯설지 않았던 이곳 향남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나의 인생에 또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때 그 추억들은 남는다. 이곳 향남에서의 2년이 내 인생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수 있지만, 30년 전의 기억과 함께 하니 또 다른 의미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