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늬 Moon Feb 14. 2024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애면글면 애쓴 이유

*소속기관의 저자되기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종이책 출간을 위해 쓴 글을 수정했습니다.


첫 줄에 고백부터 해본다. 책을 쓰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꿈꾸듯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꼭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를 꿈꾸며 지내온’ 것이 아니라 ‘교사로 살아왔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쓰고 싶던 나의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지려고 막 해돋이를 시작하려는 이 시점 내 첫 번째 책의 이정표는 학교, 학생, 교사로서의 이야기를 향하고 있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 다행이다.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더 많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간질간질 설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뿐인가. 해돋이를 볼 때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내가 소망하는 일들이 꼭 잘 될 것만 같은 긍정 회로가 돌고 있다. 간절히 바라는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 또한 가장 강력하다. 마치 실현가능 할 것처럼 믿는 때이다.

아무튼 내가 할 이야기 중 가장 많은 소재는 학교, 학생이 될 것 같다. 교사로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학생으로서 지낸 시간보다 길다는 생각에 다시금 놀랍다. 학생이던 때가 무척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며 요즘도 학생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무엇인가? 그 답이 항상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교육학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고 교사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연수를 받으면서도 일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학생의 입장을 조금은 알 것 같다가도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그 대답이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교재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은 생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사 지망생이었을 때부터 원대한 다짐이나 거창한 꿈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그래야 한다. 분명 커다랗게 꿈꾸고 이상적이고 굳건하게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동안 나의 교육관과 사고는 변해왔다. 점점 소소해졌다고나 할까.     



처음 발령받았을 때 아이들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팔이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재잘대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는데도 동시에 내가 '선생님'인 것은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생활에 대해서가 아니라 ‘선생님’으로서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는 것 같았다. 어떤 선생님이 될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자아가 확립되는 사이에 생긴 마음의 한 종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라고 생각하며 교실에 섰던 것 같다. 이 문장은 사실 2000년대 인기 높았던 어느 TV 드라마의 대사였다. ‘군사부일체’와 맥을 같이 하자는 의미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는 교권 확립에 관하여 강력하게 주장하려는 맥락도 아니다. 바둑에서처럼 갈라 치기를 꾀하거나 소위 꼰대처럼 생각했다는 뜻 역시 아니다. 단지 나는 선생님으로서 모든 것에서 앞장서고, 시범을 보여야 하며 학생들 앞에서는 실수를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숙하게 시범을 잘 보이지도 못하고 서투른 내가 ‘선생님’으로 불릴 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존경이나 애착의 대상이 되는 때는 무척 어색하고 불편했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인 교실 세계에서 이상적인 교사가 되기 위해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거나 수업모형을 연구하고 ‘교사의 발문’을 계획했을 것이다. 학습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수정해 가며 수업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예전에는 수업안에도 효과적인 수업과 지도를 위한 ‘교수자료’가 중요했으며 ‘교수자료개발’을 주제로 포상을 하기도 했다. 나도 그 도전을 위해 며칠 동안 만들기와 수정을 반복해 가며 시범용 교수자료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학생들이 “와!” 함성을 터트릴 수 있는 시각적 환기를 위한 자료를 완성하고는 뿌듯해했.

이러한 모습이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 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실천되고 있는 학생중심교육 측면에서의 노력과 다를 뿐이다. 요즘이었다면 아마 ‘학생의 질문’과 반응,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배움 중심자료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교사에 대한 생각이 그러했을 때 반대편 의미의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했겠는가. 학생 인권에 관한 사회 분위기나 사고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당시 내가 선호하는 학생은 배우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였다. 선생님의 설명이나 학습 원리를 귀담아듣고, 꼼꼼하게 책이나 공책에 기록하는 모습이 이상적이다. 수업 내용을 성실하게 반복 학습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학생이다. 요즘은 상대적으로 잘 사용하지도 않는 ‘모범생’이라는 틀 안에 있는 학생들이 인정받고 칭찬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학생들을 요즘의 방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이 정도 되려나. ‘성실하게’라고 쓰고 ‘얌전하고 순응적인’이라고 읽는 그런 학생을 바랐던 것 같다.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수업에서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기 세뇌가 ‘잘 가르치는 선생님, 좋은 선생님’으로 연결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럴수록 두려웠고 두려워서 또 배웠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완벽한 선생님이 되어야 학생도 성실하게 잘 배울 것이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사와 학생의 역할에 대해 이러한 가설을 세웠다면 그 답을 맞히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신념으로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배우고 적용하는 실험을 해 나갔을지 모른다.

수업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사진들을 직접 찍으려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했다. 학생들이 조금 더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업 자료가 풍부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 박물관이나 행사장 등 다양한 곳을 찾아 기록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학급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보여주고 싶어 했다. 때로는 행사에서 배부하는 리플릿이나 기념품들을 아이들의 수만큼 가져와서 나누어주며 홍보에 가깝게 열을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 얼굴이나 말들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도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가 부족한 수업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선생님 대부분이 이렇게 ‘가르침’에 집중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학급을 운영했을 것이다. 뭔가 빠져있는 듯 공허하기도 했던 마음은 어쩌면 ‘배움’을 눈여겨보지 못한 그 시대의 공허함이었을 것이라 위안 삼아 본다. 결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더 좋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대를 함께 보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예부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했다. 가르치면서 서로 배운다,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는 진리의 말이다. 과거의 나처럼 ‘나는 선생이니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곧 좋은 교사의 자질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으로 ‘학생의 본분은 차분하게 교육 내용을 잘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것이다. 잘 숙지하여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단련해야 한다.’ 이런 이분법적 생각으로 교육에 임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이 책을 쓰며 돌아보고 정리해 보니 젊은 날의 오류는 그 과정에서 선생이 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느라 생겨났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내가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 오히려 학생을 들여다보고 학생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더 진지하고 오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워나간다.          

어떤 시기였든 교육에 대해 선진적으로 연구하고 교실과 학생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선생님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각 분야와 과목별로 다양한 교육과정과 모형, 적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시범을 보여온 선생님들을 알고 있다. 내로라하는 선배 선생님뿐만 아니라 후배지만 존경스러운 선생님도 있다.

이러한 분들은 어느 단체나 연구회 혹은 동아리, 선도 교사로 활동한 선생님들에게서만 보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선배 선생님들이 몸소 보여주시고 조언해 주셨다. 후배 선생님들은 기꺼이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선배 선생님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고, 후배 선생님들은 싫은 기색 없이 가르쳐주었다.   


     

크고 작은 노하우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발전하고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마치 옛날 펌프 수도에 물이 잘 나올 수 있도록 부어주던 한 바가지의 마중물의 역할을 곳곳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 이 물의 흐름은 수정 보완되기도 하고 의견 차이를 만들기도 했다. 가끔은 논쟁으로 번질 때도 있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교육활동이다.

이러한 소통과 공유를 누군가는 수다의 자리로, 티타임쯤으로 치부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 많은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 본보기가 되어주는 분들을 만났다. 지금도 나의 바로 옆 교실, 바로 위아래층의 어떠한 선생님에게서 나는 배운다. 출장을 가거나 연수라는 이름으로 듣지 않았는데도 참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그것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지역교육과정’, ‘교사수준 교육과정’ 등 교육 현장의 실천과도 방향을 같이 한다. 그렇게 명명되기 이전부터 항상 해오던 교육적 고민과 대화 자체였다. 먼저 고민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선배님들, 노력하는 후배 선생님들 모두의 모습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올바른 배움, 가르침의 권리와 방향을 찾아가느라 학교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선명하다. 학생중심 배움중심 교육의 이상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 가르침과 배움이 모두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실의 확립이 절실하다. 가르침과 배움이 마치 양팔 저울 같은 이치임을 교육 주체 모두가 인식하면 좋겠다. 저울의 어느 한쪽이라도 작은 부품이 빠져있거나 부족하다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진리를 느끼기를 소망한다. 성숙하고 긍정적인 해법을 찾아 교권과 학습권이 조화를 이루기를 바란다. 잘 가르치고 잘 배울 수 있는 교육 현장과 그 안에서 함께 웃는 우리를 꿈꾼다.     


#출간 #교육 #교사 #학생 #출장 #배움 #꿈 #몸살


이전 08화 꽃과 식물의 학사일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