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인정의 사이
‘귀엽고 예쁘다고…?’ 참 독특한 취향들하고는.
개의 몰골은 검회색 털이 뒤엉켜서 혐오감마저 들었다. 신 씨 3인은 감격에 겨운 듯 내 손길을 타서 반들거리는 초록색 소파에 상전처럼 떡하니 앉혀 놓고 호들“갑”을 떨었다. 설마 저러다 안방까지 넘나드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길을 오가며 만나는 동물마다 귀엽다고 쓰다듬기 일쑤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근데 그들의 즐거워하는 태도가 어쩐지 시위처럼 느껴졌다. 동족의 수로 따지면 분명 나의 열세다. 아무래도 ‘을’로 밀려 날 불길한 징조는 뭐랄까.
역시 남의 편은 아들과 딸의 성원에 더 신바람을 냈다. 집이 떠나갈 듯 우렁찬 목소리로 개와의 소통 과정을 재탕 삼탕도 모자라 열탕까지 갈 기세다. 지겹지도 않은가. 저들은 개 한 마리를 중심으로 돈독한 동족 우의를 다지고 있지 않은가. 좀 전만 해도 3차 대전이 일어날 전운이 감돌았는데 어느 편에서 항복한 것일까. 지금 여기는 꽃피고 새우는 아니 개 짖는 즐거운 우리 집으로 무르익는 중이다. 나만은 온갖 인상이란 인상은 다 동원해서 가뜩이나 앙상한 얼굴에 더한 주름을 늘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분명, 월요일 다시 데려간다고 했다. 어디라고 개를 데려오길 데려오냐고~!” 나는 그들의 유쾌함에 대한 한시성을 깨우쳐 줄 냥으로 쐐기를 박으며 다지기였다.
“당연히 데려가야지….” 남편의 전혀 영혼이 깃들지 않은 대꾸였다. 내 정신세계는 어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저들에게 말려서 아우성인가. 내 말을 결코 귓등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는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면 바로 시댁으로 출발 예정이었다. 한데 현관문을 들어서던 아들의 품에 강아지가 안겨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방치되어 있어서 데려왔다고 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라니. 다시 있던 자리에 가져다 두던가 파출소에 맡기든가를 하라고 혼을 냈다. 돌아온 아들은 파출소에 맡겼다며 강아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엄마는 장거리 운전에 도착하기 무섭게 차례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누가 더 불쌍할까?” 아들의 말을 일축해 버렸다. 이미 나는 인정머리 없기로 인정될 만큼 얄쨜없는 훈육에 돌입해 있었다.
“아빠, 얘 피부가 왜 이래. 여기저기 오돌토돌한데…. 피부병이 있는 것 같아?”
“괜찮았는데. 왜 그러지? 오늘은 늦었으니, 월요일에 병원 데려가야겠는데. 회사 근처는 동물병원이 없는데 어떡할까?”
“내가 학교 갔다 와서 병원 데려가 볼게요.”
“그럼, 월요일 안 데려간다고? 학교는 왜 가려고? 또 남산으로 가시지….”
“당신은 또 왜 그래. 지난 일을 들먹이냐.”
“내가 자식을 제대로 못 키워서 그런다. 왜?”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언제 그대들이 내 뜻을 받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언제쯤 격앙된 말을 내뱉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참으로 요원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각기 일터로, 배움터로 나아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는 얼씬도 하지 않던 강아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서 매달렸다.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저리가.” 소리를 질렀다. 한 번도 강아지를 만져보지 않았던 터였다. 내 말을 알아듣는 듯 현관 쪽을 향해 마룻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다 작업을 끝내고 차 한잔을 만들어 소파에 앉아 있는데 다가와서는 올려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또 진저리를 쳤다. 다시 현관 앞에 엎드려서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서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품새였다. 나는 개와 함께 머무는 공간이 불편해졌다. 누구든 빠른 귀가를 학수고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는 학교가 파하자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이산가족 상봉하듯 서로 반기는 모습이라니. 얼른 수건을 꺼내서 개를 감싸더니 병원에 같이 가자고 졸랐다. 사실 사흘 동안 딸아이와 제대로 된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내 삶에서 동물병원을 출입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강아지 무엇으로 씻겼나요?” 젊은 남자 수의사가 물었다.
“글쎄요. 딸아이가 강아지 용품을 사 오기도 전에 목욕탕에서 남편이 씻겼으니…”
“사람이 사용하는 세제로 씻겨서 그렇습니다. 한 일주일간 병원 다니며 치료받아야 합니다.”
뭔 이런 난감한 일이 다 있다니. 딸아이는 덧붙여 미용을 문의하더니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날을 잡았다. 참 가지가지들 한다 싶었다.
몸체가 작은 딸아이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개를 안고 걸으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잔뜩 심기가 더 불편해진 내 눈치를 보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금요일 아침에 학교를 향해 가는데 햇살이 너무 좋아서 반대 방향으로 향했단다. 무작정 걸어서 대교를 건너고 걷다 보니 코앞에 남산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 또 한 사람의 이방인이 되셨네.’ 참 대단한 여식의 감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저들 너희의 씨족들은 하나 같이 제멋에만 겨운가. 제 어미는 종일 눈앞이 아득해서 햇살이 비췄는지 말았는지도 분간도 못 했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뭐라 하시데?”
“내가 평소에 워낙 모범적인 학생이잖아. 별말 없으셨어.”
“아이고 내 팔자야!”
“근데 엄마, 남산에 나 같은 애들 많더라.” 아마 교복을 입고 모여든 학생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종알대는 딸아이를 보면서 ‘기가 찬다는 것’은 정말 별거 아닌 별것이 되는 일이라는 결론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딸아이 품에 안겨서 포근해하는 저 애물은 어쩐다니. 막역하고 아득한 마음이 설레발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