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의외로 트집이 필요한 순간이 종종 발생한다. 격의 없이 지내온 오랜 친구 사이든, 동고동락한 동료 사이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사이든, 서로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방이 내 생각을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넘어가는 일이 생기고는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도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상대방은 왜 내가 당연히 동의할 거라고 생각할까? 참으로 오만한 착각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모임 일정을 잡을 때의 일이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오늘 퇴근하고 모일 수 있어?”
“주말까지 출근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이번 주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바쁘구나, 알았다.”
이번에는 내게 물어볼 차례였다. 하지만, 모임 시간을 잡으려는 친구는 내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기다림은 더해졌다. 결국, 내 의사를 묻는 친구의 질문은 없었다.
‘이건 뭐지?’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대부분의 모임 시간을 잡을 때 친구들에게 각각 참석 여부를 확인하며 약속을 정했던 내게 이런 친구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내겐 모임 참석이 가능한지 물어보지 않는 거야?”
내 물음에 잠시 후 친구가 답했다.
“넌 항상 가능하잖아.”
“어? 그래도 그게 아니지. 내게도 의사를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냐?”
“너 오늘 무슨 일 있냐? 갑자기 왜 그래?”
그 순간 나는 친구에게 의도적인 트집을 잡아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대충 넘어가려는 건 분명 잘못된 태도였다. 그리고 이는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이 친구는 계속해서 나를 배려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도적인 트집을 잡기로 결심했다.
“잠깐만, 왜 너는 매번 저 친구가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모이기 어렵겠다고 결론을 내버리는 거야? 내가 모임을 잡을 때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너에게도 의견을 구했는데 너는 왜 매번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결정을 내리는 거야?”
친구는 잠시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우리 사이에 굳이 물어봐야 해? 그냥 당연한 거지. 넌 매번 가능했잖아.”
친구의 대답에 이 일은 순전히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끔은 시간이 안 된다고, 참석하기 어렵다고 튕겨볼 걸 그랬다.
“그게 문제야. 우리 사이를 떠나서 말이야, 세상에 당연한 건 없거든? 내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지. 의례 짐작해서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야.”
“내 생각이 짧았네.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어.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내가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았던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만큼 나도 배려를 받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서 인정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어 한다. 격의 없는 사이에서도 배려와 존중은 필수다. 이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더 필요하다. 우리는 가끔 오래된 친구니까, 가족 같은 사이니까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짐작하고, 배려를 생략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은 상처받기 쉽다. 관계가 오래될수록 배려의 필요성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가끔씩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의도적인 트집은 상대방이 나를 더 배려해 주길 바라는 작은 신호다.
물론, 이런 트집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트집 잡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해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배려와 존중이 없는 관계는 결국 서로에게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가 된다.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가 상처받고, 무시를 당한다면 그건 결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나는 배려가 없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수록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잘못된 태도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이런 태도를 불편하게 느낀다면, 서로가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배려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침묵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너무 참기만 하고, 속에 쌓아두면 결국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끔은 의도적인 트집을 잡자. 그것은 상대방과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작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의도적인 트집은 상대방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게 하고, 나도 의견이 있다고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로 인해 작은 다툼이 있을지언정, 속 시원하게 서로의 느낌과 바람을 나누고 더 진정성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의도적인 트집을 잡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나도 당연히 배려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