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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ul 09. 2024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회사를 나온 후, 내게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얼마 전부터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내와 함께 자연스럽게 동네를 한 바퀴씩 돌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산지도 어느덧 사십 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지금껏 살아온 동네를 구석구석 빠짐없이 구경하며 다니게 되었다.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입학한 초등학교는 이제 신축 교사로 변모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매년 꼬맹이 후배들을 신입생으로 받고 있고, 씩씩하게 성장한 청소년을 중학교에 보내고 있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고가도로와 그 위를 가득 채웠던 자동차들, 떠들썩한 시장 상인들로 넘쳐나던 청계천은 복원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심의 생태 숲이 되었다. 맑은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와 천연기념물인 청둥오리, 물길을 저벅저벅 가로지르는 왜가리를 만나는 것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좁은 골목길의 동네는 다양한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들로 탈바꿈했고, 낡은 상점들이 즐비했던 대로변은 마천루 같은 현대식 주상복합 빌딩들로 채워졌다. 내가 살아온 동네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반면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노선인 1호선이 가로지르는 지하철역사와 3번 출구 앞에 자리한 미용실과 옷 가게는 예전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사십 년이 넘은 세탁소와 짜장면집은 자녀들이 물려받아 가업을 잇는다. 늦은 밤 펄펄 끓는 감기 몸살에 급하게 던 약국은 오히려 옆자리의 가게까지 확장해 운영 중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동네 한 바퀴가 주는 재미다. 매번 길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가게가 없어지고 새로 생겼는지, 공원에서 바둑을 두던 노인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지, 붕어빵 노점상은 여전히 바쁘게 주전자의 반죽을 부어가며 붕어빵 팬을 돌리고 있는지 구경하는 맛에 푹 빠지게 된다. 어릴 적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동네를 구경하다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나는 동네 곳곳에 스며든 내 삶의 기억을 느낄 수 있다.


동네 한 바퀴 덕분에, 나는 다시 동네와 가까워졌다. 이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변한 것들도 많고,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온 동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가 사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남은 삶의 새로운 추억으로 쌓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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