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2년마다 돌아오는 자동차 검사일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지금의 차를 타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다 되었다. 아직도 차를 처음 인도받았을 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그때 차는 온통 새것이었다. 특유의 새 차 냄새가 코끝에 스치고, 비닐로 덮인 시트는 갓 출고된 차임을 한껏 과시했다. 매끈한 외관과 광택 있는 차체를 보며 설렜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처음 차를 인도받고 아내와 함께 한강으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내부순환로를 타고 도심을 가로질러 한강을 따라 쭉 뻗은 자유로를 힘차게 내달렸다.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강바람은 새 차를 모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사계절의 풍경을 가로지르며 긴 출퇴근길을 수년간 함께 했다. 봄의 꽃내음, 여름의 푸르른 강변, 가을의 낙엽, 그리고 겨울의 차가운 공기까지, 매해 이 차와 함께 계절의 변화를 경험했다. 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며 일상을 헤쳐 나갔던 그 시절, 이 차는 나의 동반자이자, 도로 위의 친구였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그러나 퇴직을 하면서 내 일상은 크게 변했다. 더 이상 매일 출근할 일이 없어진 지금, 차는 나와 함께 조용히 쉬고 있다. 이제는 차를 타는 일이 매우 드물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갈 때나,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날이 그나마 차를 운전할 때다. 가끔 큰딸이 지방 촬영을 갈 때나, 작은딸이 출근을 서두를 때 잠시 운전대를 잡기도 한다. 최근에는 큰딸의 운전 연수를 해주느라 시내를 조금 더 자주 달렸지만, 그 역시도 간혹 있는 일이다.
지난 자동차 검사일 이후 지금까지 2년간 고작 6천 킬로미터 남짓 운행을 했다. 일 년에 3천 킬로미터인 셈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3개월이면 채웠던 거리다. 그땐 출퇴근으로만 하루 100킬로미터를 쉽게 넘겼으니, 차도 바쁘게 달렸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차도 휴식이 많아졌다. 퇴직한 이후로 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씩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설 때면, 차도 오랜만에 세상을 만나 설렐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일 뿐,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차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오늘은 자동차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장에 도착해 차를 맡기고 기다리면서, 혹시 녀석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이 들었다. 기계도 자주 돌려야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데, 운행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하기 때문에 드는 걱정이었다.
"차 상태가 연식에 비해서 너무 좋은데요? 관리를 참 잘하셨어요."
자동차 검사를 끝마친 검사원은 양호하다는 판정을 내리면서 내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차는 여전히 쌩쌩했다. 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언제든지 도로 위를 힘차게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득 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본래 자동차란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나는 차를 주차장에 묶어만 두고 있다.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달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차도 매일 힘껏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지 않았을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도 나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차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다시금 매일 시동을 걸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거침없이 차와 함께 도로 위를 달려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녀석도 기뻐하지 않을까?
차는 여전히 쌩쌩하고, 나는 여전히 이 차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조용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