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유례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압사라는 보고도 듣고도 믿지 못할 일이 세상에 일어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억압된 자유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아 젊은 사람들 두세사람이 모여 이태원 할로윈 행사에 참여했다. 세상에 답답함에 억눌려 있던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그곳은 더 답답한 곳이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하며 무엇을 느껴야 할까?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안타까운 상황에 함께 애도하며 소리 없는 탄식이 전부 일 것이다.
그럼 성경은 이 사건에 대해 인류에게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공부해 보고 고민해보려고 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꽃이 된 청년들은 무슨 잘못을 하였다고 목숨까지 잃어야만 하나요?
성경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 한 명 생각납니다. 그의 이름은 B.C 1000년에 성경에 기록되어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물이 되었는데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이라는 인물은 유대인에 위대한 사람 중 한명으로 거론 될 만큼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으며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용맹하였고 이스라엘의 성군입니다. 다윗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 하나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수치이자 부끄러워 말도 꺼내기 싫은 이야기를 성경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노년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왕궁 옥상이나 거느리는 권태한 삶을 보내다가 한 여인의 아름다운 몸을 보게 됩니다. 결국 정욕을 참지 못하고 잠자리를 하였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듣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살만한 행동일 것입니다.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그 여인의 남편은 다윗의 군대에 용맹한 우리아라는 이름의 장수였습니다. 출정 후 잠시 돌아와서 아름다운 아내와잠자리를 하지 않고부하들과 함께 있던 남자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임신시킨 것을 가리기 위하여 우리아에게 아내와 잠자리할 것을 청하지만 거절할 만큼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결국 다윗은 계획대로 되지 않자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전장에 가장 앞에 세우고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다윗의 계획대로 우리아가 죽게 된 것을 알게 되자 했던 말은 더 끔찍합니다.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성경을 아시는 분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분노가 차오르시나요?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당시 내가 우리아였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또 밧세바 여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범죄를 저지르기 전과 저지른 후에 다윗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참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서로 오고 갈 것이며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내리십니다.
사도행전 13:22
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이해되시나요?
이 이야기를 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을 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기록하고 보존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진리이며 진리는 사실을 말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쓴 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과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믿음을 받게 된 후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성경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마가복음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다윗, 밧세바, 우리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만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윗은 이번 일로 침상이 눈물로 젖을 만큼 슬퍼하였고, 밧세바는 다윗에게 우리아가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아는 아내보다 나라 안위를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아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성경 속에 가장 위대한 다윗을 부끄럽게 한 남자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다윗보다 더 큰 자입니다.
시편 6:6
(다윗)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편 51편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시 이태원 참사로 돌아가 이들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하고 애도할 수 있습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가족들은 분노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아의 사정을 듣었다고 위로가 되겠습니까? 전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아는 주범이 명확하기라도 하여 원망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지만 하지만 이번 일은 주범이 누구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답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잊지 않고 보존하는 것과 왕의 무능함에 부끄러워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족들의 부부와 가족 간에는 세상 어떤 가족보다 큰 사랑이 있는 가족이 되길 소망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우리아처럼이름으로 살아있는 자녀들이 만들어 준 다윗과 밧세바의 사랑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후손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