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브런치북에서는 가슴속에 있는 답답함을 표출하고 싶었다. 다이내믹 코리아, 스펙터클 코리아라고 불리며 역동적이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모두 이념 속에 갇혀 움직이지 않고 죽어가는 모습에 대한 답답함을 글을 통해 토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직 나 자신이 부족하고, 답답함을 토로할 때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보다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얘기를 여기 브런치북으로 옮겨오는 정도로 채워갔고, 오늘로 브런치북을 마무리할 수 있는 10회 분량을 다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기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 가려면, 어느 한쪽 편에 포함되지 않고, '경계'에 서야 한다고 한다. 경계에 서면, 유연하게 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만 내재되어 있는 욕망을 표출하는 주체자가 되어서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비로소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씀에 나도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느 순간부터 경계에 서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 예전에도 경계에 서는 사람이 한쪽에 치우쳐 있는 사람들 모두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공격의 정도도 강해졌다.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경계에 있으면서 진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느끼려고 하고, 이를 통해 자기가 살아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려고 하는 위선자들이 넘치고 있다.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경계에 서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확신할 수 없었다. 경계에 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는 있지만, 경계에 서있지는 못했다. 경계에 서려면, 발목의 힘도 상당히 강해져서 경계를 정확히 딛고 서있을 수 있어야 하며, 균형도 제대로 잡고 있어야 한다. 경계에서 조금이라도 무너지게 되면 한쪽에만 치우쳐 있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꿋꿋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서있을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 위해서 각자도생 시대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터득하려고 애썼다. 이런 의미에서 수요일에 '각자도생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나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을 또 만들어서 꾸준히 글을 채워 넣기도 하였다. 그 브런치북도 이번 주에 10회 분량을 채울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각자도생 할 수 있도록 강한 힘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브런치북을 통해 글을 쓰면서 글을 쓰기 전에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은 밖으로 표출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글을 통해 표출하게 되니, 나의 겉모습을 형성하고 있던 많은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번 주에 브런치북을 마무리 한 뒤에 다시 발행할 브런치북은 내 속에 있는 얘기를 보다 진솔하게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기획도 하고, 미리 글을 쌓아둔 뒤, 편집 등에 신경을 쓰면서 브런치북을 발행해보고자 한다. 그럼 더 발전된 모습으로 다음번에도 뵐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