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의 올바른 방향 - '인연의 순차'

by 루케테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이다. 한창 마음이 혼란할 때이기에, 마음을 추스르고자 집 근처에 있는 '사찰'에 자주 갔었다. 집 근처라고 하여도 30분 정도는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취업 준비를 위해 앉아만 있었던 때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기도 하였기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틈날 때마다 사찰에 갔었다. 사찰에 있는 청년회에 참석하여 나와 유사하게 취업 등의 문제가 고민이 많은 분들과 자주 소통하기도 하였다. 자칫 외로워질 수 있는 시기에 불교 청년회는 나에게 많은 힘과 위안을 주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법회를 함께 가지기도 하였고, 쳥년회 주관으로 1000배 정진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는 조금 더 큰 사찰에서 시행하는 3000배 철야 정진 기도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늘이 높고 화창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청년회 멤버 중 한 명이 대구 있는 불교대학과 인연이 있어서 청년회 멤버 10명 정도가 그곳에 견학을 갔다. 대구에 소재한 불교대학은 규모가 엄청났다. 10층이 넘는 건물 하나가 모두 불교대학이었고, 층층마다 각자의 주제에 맞는 기도도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층에는 한 바퀴만 돌려도 금강경을 읽은 공덕을 가질 수 있는 수행도구가 있기도 하였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층도 있었다. 층층마다 견학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충분히 느끼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견학 중에 내게 가장 잊지 못했던 시간은 견학 막바지에 불교대학 원장 스님을 만났을 때였다. 상당히 높은 법력을 가진 스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번 차담 시간 때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큰 스님과의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간 뒤, 질문하는 시간이 되었다. 차담에 참여한 청년회 멤버들이 각각 질문을 하고 스님께서 답변을 해주셨고, 나는 질문을 할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짐한 것도 있어서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스님께 질문을 하였다.


"임진왜란 등에서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스님들이 군대를 일으켜 왜군과 직접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왜군과 한국인 둘 다 부처님 아래 모두 같은 중생인데, 부처님을 따르는 스님들이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서 싸운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하여야 하나요?"



스님은

"우리에게는 '인연의 순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연의 순차'를 따르면 됩니다. 즉, 자신과 인연이 가까운 사람을 더 위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의 순차'는 그 이후 어떠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내게 가장 큰 판단 기준이 되었다.





요즘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이 유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접했다. 예를 들면 같은 돈을 기부하더라도 어떤 사업은 후진국 사람 100명을 살릴 수 있고, 어떤 사업은 선진국 사람 1명을 살릴 수 있으면


100명을 살릴 수 있는 사업에 돈을 기부하여야 하는 것이 효율적이므로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십몇년전부터 실리콘밸리에 큰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 ChatGPT 회장이 잠깐 쫓겨났던 것도 '효율적 이타주의'에 기반한 행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연의 순차'의 논리에 따르면 '효율적 이타주의'는 맞지 않다. 나에게 인연이 가까운 사람과

나와 인연이 먼 사람은 동등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자신과 인연이 가까운 사람 1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과 인연이 먼 사람 다수를 희생시켜도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효율적 이타주의에 너무 매진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이다.)



'인연의 순차'를 '이타주의'와 연계하여서 한 문장으로 말하면, '마음 가는 사람을 도와라'이다.


후진국 사람을 돕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고, 자국민 사람을 돕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각각 사람들마다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이타주의를 실행한다고 그것을 저지하고, 다른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만 않는 것. 이것이 '인연의 순차'에 따른 이타주의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마음 가는 대로 하길 바란다.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고민하지 말고, 자기 마음이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살도록 하자. 그러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질 수 있도록 하고, 타인에게 이타주의의 방향을 강요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 세상이 오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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