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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케테 Jun 19. 2024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이 머릿속이 하얘졌다. 샤워실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글로 옮겨보겠다면서 떠올랐던 생각들도 사라졌고, 심지어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까지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생각들이 갑자기 멈춰졌다. 모든 불빛이 사라진 암전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하안 도화지 같이. 하얀 바탕에 그저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하나 썼다.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저 그 한 문장... 그래도 그 한 문장을 통해서 다른 새로운 문장이 생겨났고, 손은 계속해서 키보드를 누르고 있다. 왼손으로는 자음을, 오른손으로는 모음을, 받침이 있을 때는 왼손으로 키보드로 한 번 더 눌러준다. 그중에서 가장 바쁜 손가락은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다. 이유는?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은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닥' 낱말 하나가 없어졌다. 심지어는 문장 하나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다음으로 바쁜 손가락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다. 나는 이 손가락으로 스페이스바를 계속해서 누른다. 일본어와 같이 띄어쓰기가 없는 글쓰기라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거의 놀고 있었겠지.


이렇게 2 문단이 완성되었다. 여전히 무슨 글을 쓰려고 하는지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아직도 머릿속은 백지상태이고, 그저 내 왼손 오른손만 열심히 움직이면서 하나씩 낱말을 문장을 문단을 만들어 가고 있다. 손에 뇌가 달려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이렇게 문장을 만들다 보면, 내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기억이 날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 말을 하자마자 거짓말같이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사회에 속하는 구성원에서, 독립적인 하나의 자아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타인과 사회의 평판에서 벗어나고, 사회와 이상이 요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서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 내가 충분하다고 느끼면서 나를 자책하지 않고, 자기 비판하지 않고, 온전하게 완전한 나 자신으로 거듭나고 있다. 거듭나고 있는 과정에서 나는 주변을 너무나 사납게 대했다. 특히, 나의 가족들에게.. 


처음에는 그저 학창 시절에 제대로 겪지 않았던 사춘기가 아주 늦은 시기에 다시 나타나는가 보다 했다. 그래서 40대에 접어든 지 꽤 지나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가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하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었던 나 자신이, 등장인물이 아닌 존재로 변모하는 거대한 변화였다. 사회가 요구했던 기본 틀인 합리성, 민주주의, 공정성, 형평성 등을 무작정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러한 틀 밖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사람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한 때는 분노에만 가득 차 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 자신이 서로 괴리감이 크기 때문에, 또는 나라와 사회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다가가기는커녕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모습 등에 크게 분노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아등바등하기도 하였다.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김기덕 님 노래 '봉우리'의 가사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그 봉우리는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먼발치에는 더 높은 봉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나에게 점점 더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분노.. 아니 외롭게 하는 것은 주체적인 사람들이 점점 없어져간다는 것이었다. 발전된 사회가 주는 달콤한 꿀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지내는 사람들.. 그래서 사회에 종속되어 주체성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들. 한 때 자신의 뜻을 강하게 내세우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저 하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되어갈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이러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나는 더 크게 분노해야 했다. 왜냐하면 나도 아직 등장인물에 불과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불과했던 내가 이러한 외로움과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하여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서 벗어나고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완전하다고 받아들이게 되면 이러한 외로움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기대와 실망이 없는 가족을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가족부터 이렇게 대하게 되면, 이것이 확장되어 나의 친구에게 동료에게, 사회도 이렇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등장인물에서 벗어난다고 하여도,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가치를 받아먹지 않고, 사회가 인증한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것처럼 '아이폰'을 만들거나, 앨런 머스크가 하는 것처럼 '자율주행차', '스페이스쉽'을 만들거나, 샘 올트만처럼 '챗 GPT' 등 인공지능을 만들거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하였던 것처럼 반도체 사업을 부흥시키거나 하여 새로운 먹거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창조를 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있다. 그것은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것이다. 사회를 대변하는 글이 아니라, 사회를 이어가는 글이 아니라,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구현해 나가는 그러한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그러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처음 적었던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문단이 되었고, 또 다른 문단을 가져왔다. 글을 쓰다 보니, 지금 내가 말하고픈 생각이 떠올라 글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비록 겉으로는 두서없이 보일지는 몰라도, 가슴속에 있는 진실한 얘기를 쓰고자 했다. 내가 쓴 글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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