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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케테 Mar 18. 2024

빙산의 일각

인간 개개인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 범위가 넓고, 심오하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 중에서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우주도 우리 눈에 보이는 건 5%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고작 5%만 보면서 우주를 판단한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상대가 드러낸 모습만을 보며 판단할 수 없다. 만약, 심연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사람이 보이는 말과 글, 행동에만 의지한 채 평가할 수 밖에 없다. 말과 글, 행동이 표출하는 표면적 의미를 중시하고,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기는 힘들 수 있고, 행간의 의미를 넘어서 말과 글, 행동이 깔고있는 배경과 전제 등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주저리주저리 표현해도 된다. 하지만, 언어로 우리를 표현한다고 하여서 언어로 표현된 내가 진짜 나일까? 아니다. 사람이 소통을 할 때도 언어적 소통 30%, 비언어적 소통 70%를 사용하는데, 30%에 차지하는 언어적 소통만으로는 자신의 진짜 뜻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세상이 급격하게 돌아가고, 자기 삶도 챙기기 힘든 상황에서는 자기의 진짜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이해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이며 상대가 바라봐주길 바라기 보다, 남들이 바라봐주길 바라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려고 한다.  SNS에는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이 넘쳐난다. 실제로 외부에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에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말을 붙히면 설득력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계속 상상하고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뛰어난 한 선인의 말씀을 떠올려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자신을 잘 몰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목표로 하는 모습도 없었다. 내 심연이 너무 깊어서 그랬을까? 너무 넓어서 그랬을까? 나 조차도 나의 심연을 다 알지 못했다.


아마도 가슴 속에 깊게 자리 잡은 공허감이 내가 자신을 제대로 아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공허감을 이겨내는 힘을 가졌다. 공허감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뛰어넘고 이제야 나의 심연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모습의 0.1%도 외부에 보여준 적이 없다. 내 진짜 모습을 잘 알지 못했고, 확신이 없었기에, 진짜 모습을 보이기 보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하였다. 이것은 나를 곁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본 와이프가 한 얘기이니 믿을만한 얘기다.


이제는 나의 진짜 모습에 확신을 가지고, 내 진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직은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외부의 자극에 급작스럽고 지나치게 반응하려는 모습이 아직은 남아있는듯 하다.


타인이 나를 그렇게 판단하였다면,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그렇게 판단하지 않길 바랬다면, 그렇게 판단하지 않도록 말, 글과 행동을 보이면 됐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타인을 원망하는 나의 모습은 한심해보인다.


이제는 나의 진짜 모습을 갈고 닦아서 나의 매력을 보다 더 세상에 뿜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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