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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 Oct 08. 2024

네가 너로서 걸어갈 수 있기를


직장 생활보다 어려운 게 양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사춘기 아들, 개구쟁이 딸과 함께 매일매일 티격태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가 한창인 아들과 깊이 있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마주하는 시간이 짧아지며 작은 일에도 언성이 높아지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운동에 진심인 아들이라 잘 하고 있다 격려해 줬지만, 몇 차례 해야할 일들을 미루는 모습을 보며 다독이긴 했었지만 결국 미루다가 하지 못하고는 안 하겠다 놓아버리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니' 

그동안 턱 끝까지 올라와도 삼켜왔던 말들을 결국 오늘은 넘기지 못하고 뱉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독한 말들을 뱉어내고 뒤돌아서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자책을 하고 또 밀려오는 안쓰러운 마음이 믹스되며 한참 괴로웠습니다.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아이가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표현의 차이로 보이는 모습이 달라 아이에게 닿게 되는 마음이 크기가 다를 뿐,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 이야기를 듣고 따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이 부모도 아이도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모가 고군분투하고 있듯, 아이도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혹여, 잘 보이지 않는다고 그저 자신의 잣대로 판단해버리는 부모를 보며 아이 혼자 답답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건 아닐지...


오늘도 불같이 화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마주하니 정말 괴롭습니다.


나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것도 벅차하면서 내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이래저래 잔소리하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낍니다.


누구보다 다정하고 또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마주 하고픈 마음과 달리, 아이들에게 엄한 목소리에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하고는 돌아서며 후회하기 일쑤인 나의 모습이 한심하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은, 아이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모습일 텐데.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인데 말입니다.


얼마 전 필사 모임에서 동기가 공유해 주었던 글을 꺼내보았습니다.

내가 나로서 잘 사는 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내가 당당히 내 길을 가야 내가 내 삶에 만족하고 열심히 살아야 아이들도 뒤돌아 보지 않고 자신의 길로 걸어갈 수 있다. 내가 없어도 엄마는 알아서 잘 살 사람이라며 홀가분하게 자신의 삶으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박순우


최근 우연히 보게 된 박노해님의 글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 박노해,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잔소리가 아닌 내가 먼저 스스로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이자 생각해 봅니다. 말로만 이래라저래라 늘어놓으며 강요하는 후진 존재가 아닌 좋은 벗, 인생 선배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까 고민해 봅니다.


아마도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모습, 개인의 성장을 추구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 결국 내가 나로 당당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들은 결국, 아이들과 동행하며 성장해 갈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만, 멋진 삶을 꿈꾸며 저의 품을 떠날 아이들이 진정한 자신으로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네가 너로서 걸어갈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작은 노력들을 해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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