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파이 Jul 11. 2024

탈출이 답일까?

그대여, 어디로 가고 싶나요

여름맞이 납량특집 개봉박두.


어느 날 새벽, 꿀잠을 자고 있던 내 귓가에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의 소리가 들렸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잠에 취한 나는 폰 충전기 선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일 거라 생각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연이어 마룻바닥을 치는 소리...

그 달각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번쩍 떠졌다.


'이게 무슨 소리...?


그 이상하고 기묘한 소리에 소름이 쫙 끼치는 걸 느끼며 손을 더듬거려 먼저 핸드폰을 찾았다.

언뜻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더니 바닥에 무언가 시커멓고 커다란 형체가 보였다.

비몽사몽인 상태의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거대한 바퀴벌레... 또는 쥐????


기절초풍하며 핸드폰 라이트를 켜서 그 형체를 향해 비췄더니,


김가재였다!


김가재가 어항을 탈출한 것이었다.

전날 저녁에 어항 물을 교체한 남편이 뚜껑 닫는 걸 깜빡한 것이다.


가재는 원래 탈출의 명수라고 한다.

그동안은 요 녀석이 사이즈가 작아 탈출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방심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김가재가 꽤 커버렸는데 말이다.


김가재라는 걸 알아채고 내심 안도하면서도 내가 혼자 잡을 엄두는 나지 않아 자고 있는 남편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오빠야!! 김가재 탈출했다!! 저거 쫌 빨리 잡아 봐라!! 빨리 일어나 보라고!!"(극성맞은 부산 사투리)


내 호들갑에 남편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처음 보는  가재 탈출에 당황한 건 남편도 마찬가지.

허둥지둥 잡을 수 있는 장비를 가져와서 겨우 김가재를 검거했다.


도대체 몇 시간을 물 밖을 돌아다닌 건지 꼬리엔 먼지가 잔뜩 붙어있고, 그 푸른 겉껍질 색깔이 거무튀튀하게 마를 정도였다.

김가재는 힘들게 탈출한 어항에 다시 잡혀 들어가는 게 억울한지 버둥거리다가 결국 어항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놀랐던지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가에서 쿵쿵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어디 소파 밑이나 장롱 밑으로 들어갔으면 영영 못 찾을 뻔했는데 마침 내 침대 옆에로 와서 마룻바닥을 두드린 덕에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휴우~


이후에도 김가재는 호시탐탐 탈출을 도모했고 총 3번의  성공했다.

두 번째는 새벽에 남편이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 옆에서 발견했고, 마지막 세 번째는 어항 뚜껑을 깨 먹은 날 밤어김없이 탈출을 감행해서 안방 입구에서 체포됐다.

잠결에 또 마룻바닥 치는 소리가 들려 직감적으로 김가재라는 걸 알아챘고, 이번엔 지난번처럼 당황하지 않고 쉽게 잡아넣었다.

(혹시나 보시는 분들께 혐오스러운 사진으로 보일까 싶어 사진은 작게 편집해서 붙여보았다. 마치 바선생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물 밖에서 껍질이 말라서 그렇지 물속에서는 아름다운 푸른 색깔을 뽐낸다.)

'나를 또 잡아 넣다니!!' 마치 화난 듯 보이는 김가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후에도 김가재는 아래 첨부한 사진처럼 여과기에 매달려 물 밖에 고개를 내밀어보곤 했다.

마치 매일같이 똑같은 답답한 어항 속을 벗어나서 더 넓은 바깥세상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가재가 꿈꾸는 바깥세상은 어디였을까?

어항 밖 세상은 물도 없고 혼자 힘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도 없다.

만약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좁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매번 김가재를 구조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의 자유를 위한 쇼생크탈출을 매번 막아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실제로 실행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결과물만 보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 어항을 벗어날 도전을 쉽사리 하긴 어렵다.


남편이 퇴사하고 그에겐 자유가 찾아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내일 출근을 위해 밤시간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볼 필요도 없었고,

답답한 정장과 구두에 몸을 끼워 넣을 필요도 없어졌다.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자고,

원하는 시간에 업무를 보고,

하는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겨도 되고,

여행은 언제든지 시간 제약 없이 떠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자유를 획득한 그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몇 년 동안 그토록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였지만 막상 퇴사한 그가 맞닥뜨린 자유는 또 다른 불안이었다.

나는 그가 혹시라도 내 눈치를 볼까 싶어 되도록이면 말을 아꼈다.

뭐든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보라고 권해봤지만 회사 다닐 때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건 물 밖 세상이 아니었을까?

막상 나와보니 원하는 곳이 아니었던 걸까?


남편이 좋아하는 만화책 <베르세르크>에 유명한 대사가 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그럼 낙원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그대여, 어디로 가고 싶나요?


빼꼼 내민 김가재 머리...물 밖 공기가 더 좋니?

* 김가재 탈출기 웹툰


김가재가 첫 탈출을 감행한 날, 내 이야기를 듣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 첫째가 아이패드로 웹툰을 그렸다. 장래희망이 웹툰 작가라며 몇 번 그려보더니 작가는 못하겠다고 바로 포기했다. 그래도 중학생 치고 꽤나 잘 만들어서 번 기회에 브런치에 공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을 먹고 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