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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27. 2024

거대한 충돌: 편애와 애정 사이

나는 당신을 편애합니다_손한녕

들어가며


내게 책이란 '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전히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 몸을 누일 한 평의 공간이 얼마나 비싼지 체감한 이후 갖게 된 마음가짐이다. 읽는 족족 책을 사자니 금액이 부담스러웠고,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읽은 책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싫었다. 도세권에 살아서 가능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 내게는 최고의 복지였다.


최근에 새로운 낭만이 생겼다. 독립서점을 방문해 그리 유명하지 않은 책을 구매해 읽는 것. 여기서 유명하지 않은 책이란 베스트셀러 이외의 것이다. 서울로 떠나는 날 기차 시간까지 고심을 거듭해 구매한 책, <나는 당신을 편애합니다>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기로 해요.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좋아할 수는 없을까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고, 숨기는 것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자연스럽지도 않고, 더구나 상대방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저렇게 내뱉어버리면 듣는 사람은 그 장소에 맞지 않게 나뒹구는 말들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언행은 늘 조심해야 한다. 작은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을 말해줄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 사람 전체를 보여줄 순 없지만,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우리 삶에서는 단편적 행동 하나로 그 사람을 기억하니까 말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너무 쉽게 사람을 미워하거나 내쳐서 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미운 사람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도 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미워 보이는 것이다.
나와 당신의 지난 아픔과 결핍이 우리의 관계를 망치지 않게끔 서로 노력해요. 서로의 작은 구멍쯤은 포근히 안아서 덮어주기로 해요.
결혼을 떠나서 누구와 같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를 이루는 과거의 모든 세계와 당신을 이루는 과거의 모든 세계가 만나서 거대한 충돌을 만드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추어 살아가는 것은 상대를 향한 사랑과 이해를 넘어 본인의 부족함을 먼저 아는 자기반성이 있기 때문 아닐까.
“엄마가 스무 살 때부터 나중에 혹시 딸 낳으면 주려고 재밌게 읽은 책을 모아놨어.”
인생은 온통 무지갯빛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하루가 행복하면 사흘쯤은 무미건조하고 이틀은 끔찍하게도 불행하다는 것쯤은 알아버렸다. (중략) 언제 다시 달아날지 모르는 그 행복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누리기를,  그 가득 찬 환희로 불행이 돌아올 때까지 온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마치며


나는 짬짜면의 등장을 크게 반겼다. 얼큰한 국물이 일품인 짬뽕과, 입가에 검은 소스를 묻혀가며 먹어줘야 제 맛인 짜장면. 특징이 너무나도 분명한 두 음식은 중식계의 양대산맥이다. 메뉴판에 함께 올라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애초에 비교군이 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짜장면보다 짬뽕이 좋다는 얘기를 속 시원히 하지 못한다. 짜장면 파()에게, 내가 짬뽕을 편애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싶지 않았다.


편애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한다는 뜻으로,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보다는 흑이 짙은 책 제목이라니. 낯설었고, 그래서 끌렸다.


어떤 대상을 편애한다는 것을 이렇게 공공연히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더 나아가 나는 무언가를 편애하는 사람을 마음 편히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편애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작가는 위와 같이 질문했다. 내게 있어 편애란 죄악이었다. 여러 자아 중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우위에 있는 탓이다. 한 학생만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특정 과목만 재밌게 지도하지 않기 위해서 무수한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함이 어색했다. 무언가를 특별히 좋아해 다른 것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끔, 적어도 내게 있어 '옳은 행동'을 했는데 왜 계속 헛헛한 마음이 드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책은 그에 대한 답이 되었다.


온 힘을 다해 편애를 피했던 나, 과연 진심으로 무엇을 애정한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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