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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22. 2024

폭력에 대하여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_하인리히 뵐

들어가며


 고전은 항상 현대적으로 해석되는 데 의의가 다. 달리 얘기하면, 오랜 시간과 많은 이들의 고민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는 게 아닐까. 인생의 비법서가 있다면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폭력의 발생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다. 폭력성은 언제나 존재했고,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구절

여기서 언론의 과잉 반응에 대하여 언급해야겠다. <차이퉁>지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들까지도 실제로 한 저널리스트의 피살사건을 특별히 더 나쁜, 특히 경악스럽고, 거의 장엄하기까지 한, 그러니까 종교의식적인 사례와 같은 수준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의기양양하지는 않아도" 태연해 보였다는 점에서 의심을 받았다.
오전에 아파트 욕실에서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욕실 문 앞에서 감시했던 경찰 중 한 명이 그녀에게 "한 잔 대접하겠다"라고 했음에도, 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돈을 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카타리나는, 다정함은 양쪽에서 원하는 것이고 치근거림은 일방적인 행위인데 항상 후자였노라 주장했다. 심문에 참여한 신사들이, 그런 것은 모두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심문이 보통보다 더 오래 걸리는 건 그녀 탓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치근거림 대신 다정함이라고 쓰여 있는 조서에는 절대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친절과 호의는 선관은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준 블로루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주장했다.

마치며


 여러모로 매력적인 책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45년 전에 나온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에게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얼마나 중립성을 지키는가. 얼마나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보도를 읽어내는가.


 기자는 카타리나 어머니의 말을 제 구미에 맞게 해석했다. 근면성실하던, 여성의 순결한 사랑도 깔끔하게 매도했다. 그녀와 친분을 유지하던 지인들조차도 사실관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극적인 부분에만 주목했다. 카타리나가 겪었던 일들은 사회구조적인 파괴였다.


 연예계 뉴스 말미에 댓글을 다는 기능이 사라졌다. 비극적인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사회에 폭력성이 사라졌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며 때론 크게 달라지며 재해석 된다고 한다. 지금 이 책을 읽고는 '그때도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구나' 공감대가 생겼지만, 40-50대에 다시 읽게 되면 '그때는 그랬지'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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