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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21. 2024

글감을 찾아가는 삶

겨울의 언어_김겨울

들어가며


 좋은 책은 독자를 또 다른 책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한다. 만약 강력한 힘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사람에 대한 관심이지 않을까. 나는 사물보다 사람에 끌리는 성정을 지녔다. 몇년 째 듣고 있는 플레이리스트도 가수에 따라 정렬되어 있다. 한 명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의 대표곡부터 수록곡까지 날을 잡고 섭렵하는 것이다.


 이런 내가 최근에 빠진 것은 바로 독립출판이다. 알고리즘에 따라 한참 유영하다보니 이슬아, 이훤, 김겨울 작가의 인터뷰까지 보게 되었다. 친분이 두터운 그들이 만나면 어떤 얘기를 나눌지 궁금했다. 분명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 나온 김겨울 작가의 산문이 떠올랐다. 제목처럼 겨울에 읽기 좋은 책이길 바라며, 그렇게 또 다시 지나갈 겨울을 위한 책을 골랐다.


마음에 드는 구절

머리 위로 쓰레기봉투 꽁다리를 묶는 것 같은 나날들이 있었다.
숫자 하나에 추억과, 숫자 하나에 사랑과, 숫자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저 정말 결혼 안해요.
나와 다른 이가 비록 그 경험은 다를지라도 각자의 고통을 겪었음을 알게 될 때, 그래서 시집을 붙잡고 울 때, 그 열띤 고통은 잠시나마 진정된다. (중략) 악몽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야만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동시성의 감각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 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기차의 여정은 정확히 끝나기에 달콤하다. 우리는 이 기차가 변수 없이 목표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중략) 목적지에 도착한 기차에는 이제 나의 자리가 없다. 여전히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부정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인간됨이다. 태어나서 이 몸을 가지고 얼마간 적당한 능력으로 살다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사실(하략)
삶은 혼돈이고, 무질서는 승리하며, 성취는 무너진다. 삶은 인간의 자존감이 편안히 기댈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삶에게 두 가지 제물을 바치도록 태어났다. 그 두 가지는 노력과 우연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MBTI를 알았다면 이제 그걸 가지고 서로을 이해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해와 판단은 한 끗 차이. 판단보다는 이해의 도구로 MBTI가 쓰였으면 한다.

마치며


 나는 경제학을 잘 모른다. 겨우 아는 것이라고는 매몰비용과 기회비용뿐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단어에 묶여서 살고 있다. 지금 당장 의미 없는 건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무심한 이유로 쉽게 지나치는 일들이 많았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한 번의 쉼 없이 졸업까지 내달렸다. 코로나가 한참 동안 이어져 외출이 어려웠기 때문이고, 젊은 날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 싫다는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첫 학기에는 장학금까지 주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일렁에는 마음에 힘을 보탰다. 입학생이 있어야만 과가 유지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앞뒤를 재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 이어 임용고시를 치룬, 내 몸속 깊은 관성에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학위 논문 쓰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때의 나는 배움을 통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게 없었다. 덕분에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졌다. 내게 대학원은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내 최종학력은 초등영어교육 석사 하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이든 간에, 남들보다 조금 더 공부했다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아차리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상담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차별화 된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삭히기 힘들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서는 영어 관련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담임을 피해 교과 전담을 맡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크게 아프다거나, 교무부장 정도의 직급을 달지 않은 지금의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양가에 앞으로 3년 간 공부에 몰두하고 싶다고 선언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여유롭지 못한 재정을 뒤로 하고 석사 학위를 두 개나 딴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그러던 중 <겨울의 언어>를 읽게 되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가져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몇 천 만원의 등록금, 그리고 그보다 더한 피땀눈물을 쏟더라도. 그래서 겨우 딱 한 줄 ’석사 과정(졸)‘만 얻더라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어느날 예상치도 못한 의미가 되어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게 되었. 사실 이미 선 결심에 누군가의 따뜻한 지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추운 겨울,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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