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언어_김겨울
머리 위로 쓰레기봉투 꽁다리를 묶는 것 같은 나날들이 있었다.
숫자 하나에 추억과, 숫자 하나에 사랑과, 숫자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저 정말 결혼 안해요.
나와 다른 이가 비록 그 경험은 다를지라도 각자의 고통을 겪었음을 알게 될 때, 그래서 시집을 붙잡고 울 때, 그 열띤 고통은 잠시나마 진정된다. (중략) 악몽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야만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동시성의 감각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 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기차의 여정은 정확히 끝나기에 달콤하다. 우리는 이 기차가 변수 없이 목표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중략) 목적지에 도착한 기차에는 이제 나의 자리가 없다. 여전히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부정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인간됨이다. 태어나서 이 몸을 가지고 얼마간 적당한 능력으로 살다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사실(하략)
삶은 혼돈이고, 무질서는 승리하며, 성취는 무너진다. 삶은 인간의 자존감이 편안히 기댈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삶에게 두 가지 제물을 바치도록 태어났다. 그 두 가지는 노력과 우연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MBTI를 알았다면 이제 그걸 가지고 서로을 이해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해와 판단은 한 끗 차이. 판단보다는 이해의 도구로 MBTI가 쓰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