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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19. 2024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_최은영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주 간단한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우선 도서관 신착 도서 서가에 간다. 그다음 최대한 사람들의 손때가 덜 탄 책을 찾는다. 이유는 하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야 책을 펼치기라도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정적인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뿌옇고 흐려 무엇을 담은 것인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어떤 얘기가 담겨 있을지 잠깐 추측하다 품속에 안았다.


마음에 드는 구절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너는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안방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창에 달라붙은 눈은 금색 작은 물방울이 되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눈은 지상의 사물들을 흰빛으로 덮었다.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가 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마치며


 학창 시절에는 교과서 이외의 텍스트를 읽는 게 죄스러웠다. 비생산적인 일을, 굳이 찾아서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공부할 게 쌓여 있는데 소설을 읽는 건 내게 시간 죽이기나 다름없었다. 수능에 나올만한 현대문학이면 모를까.


 글을 소비하기만 하다 생산하는 입장이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림만 예술인 줄 알았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소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인데, 풀어나가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 지 읽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끔은 내 주변인을 닮기도, 또 시대를 담기도 한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세상을 담은 이야기이다. 급진적인 개발로 인해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는 사람의 설움을, 기지촌에서 성유린을 당한 여성들의 아픔을. 일곱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책은 지금 시대가 사소하다고 앞서 판단하면서 축소시키려는 현실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물으면서,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형성된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일로 자처하며,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함께 고민할 차례이다.


* 더 가보고 싶어_양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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