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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Mar 23. 2024

인어공주 탈출기

치밀함이 목소리를 지킨다


일평생을 고독과 침묵 속에 살아야 하는 <카르투시오>. 침묵 수도원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답답해서 하루라도 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 3월, 학기 초 고질병이 도졌다.



심 지도 후에서야 교실은 비로소 차분해진다. 조용히 밀대를 밀다 보면, 목이 따끔 따끔 하다. 언젠가부터 3월 둘째 주에는 꼭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약한 성대결절이니 조심하란 말이 나와야 비로소 의식적으로 말수를 줄인다. 누군가 교사를 돈 없는 연예인이라고 했던가. 가수도 아닌데 평생 목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게 웃기면서도 서글퍼졌다.


1학기 말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신경 써야 한다. 바로 지금, 학기 초부터 치밀해져야 한다. 나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남겨본다.




3월, 학급을 세우는 달

 3월 달에 자리잡지 못한 것은
일 년 내내 못한다.
 

이미 취업을 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인가 싶을 정도로 매사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즉, 3월에 시작하지 않은 것은 일 년 내도록 시행하지 못한다는 것. 


나 역시 학기 중에 많은 연수를 들으러 다녔다. 꽤 성장했다 싶을 정도로 좋은 것들을 많이 배운 한 해였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교실에 적용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러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도 어느새인가 관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봄방학만 되면 전투태세를 갖춘 병사가 된다. 다음 학기에는 비로소 이 구멍을 메꿔보려는 의지가 타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3월의 학교는 다른 의미로 전쟁통이다. 우선, 다른 별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새로운 행성에 모였다. 그리고 새로운 생활 규칙을 세운다. 얼마 전에 봤던 '더 커뮤니티'라는 서바이벌이 떠오른다. 카오스에서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게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왕성하게 관계를 맺어 나가고, 교사는 그런 아이들을 관찰하며 관계성을 파악한다. 그러다 보면 몇 주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거기다 3월 말에는 주로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다. 이렇게 기본 생활습관과 기초 학습능력을 기르는 데만 3월 한 달을 쏟는다.


 하나도 틀리기 싫은 FM 성향의 아이들부터, 틀려도 좋으니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걸 실행해 보려는 아이까지 구분 없이 있는 한 공간, 바로 교실이라는 곳에 머무른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역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나, 어디서 어디까지 아이들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 교실의 자동화를 위해 올해 새롭게 시작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학급 규칙을 세워요



도덕 수업은 맞는 말만 하는 시간이라 따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본질은,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다.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 그리고 교사의 자율성이 높은 과목이라 준비를 하다 보면 재밌기도 하다.


한 번은 친구의 소중함을 이해한 뒤,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차시가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화가 났던 상황을 떠올렸고 이를 장소별로 분류했다. 그리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일반화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수긍하는 우리 반 규칙을 만들었다.  



우리 반은 개인 보상과 전체 보상을 모두 이용한다. 우리 반에는 5단계 칭찬표가 있다. 아이들이 규칙을 잘 지키거나,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할 때 자석이 하나씩 올라간다. 그리고 다섯 개를 모으면 뽑기 통을 돌릴 수 있다. 뽑기 캡슐 안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보상(보드게임 시간, 운동장 놀이, 영화 시청, 과자 파티 등)이 들어 있다.


개별 보상과 전체 보상을 동시에 하는 이유가 있다. 모둠 보상만 했을 때는 개인의 문제 행동에 적절한 피드백이 되지 않았다. 흔히 얘기하는 무임승차 효과도 피할 수 없었다.


전체 보상을 놓쳐서는 안 되는 까닭도 있다. 경쟁 심리가 강한 저학년들에게 협동의 힘을 알려주고 싶었다. 종종 아이들은 내가 자석을 올려주길 바라며 다른 아이의 선행을 크게 칭찬하곤 한다. 막상 칭찬표를 들여다보면 5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아이일 때가 많다는 게 함정이다.




날 따라 정리해 봐요, 이렇게~


1학년만 맡다가 3학년을 만나니 천재인가 싶다. 본인 자식은 다 천재 아니면 영재 아닌가 고민한다더니 딱 그 상황이다. 그 덕에 아이들은 이제 벌써 '자유시간'을 다섯 개나 모았고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유시간에는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교실에 있는 보드게임은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속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의 물건을 소중히 대하고, 자기가 사용한 물건을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는 덕목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그래셔 정리된 보드게임 존을 찍어 서랍장 앞에 붙였다.



내 목을 지키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보드게임 매뉴얼 QR 코드이다. 아무래도 보드게임은 매뉴얼을 읽는 것보다 동영상을 보는 게 이해가 쉽다. 각 보드게임별로 이해가 쉬운 영상을 골라 QR 코드를 만들었다. 교실에 있는 태블릿을 활용하여 아이들이 게임 규칙을 익히고, 다양한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수업 시간에는 학습 활동에만 집-중!


요즘 부쩍 수업 중에 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러자니 수업 시간 40분이 너무 짧다. 이 짧은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가 치밀하게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모둠 바구니이다.


싱킹맵 활동을 할 때 필요한 다양한 사이즈의 자석 칠판, 색깔별 보드마카, 화이트보드 지우개,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포스트잇을 모둠별 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수업을 지도해 주시는 수석님께서는 항상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학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실제로 수석님 수업을 보면 학생의 책상 위에는 연필, 지우개 하나 싹만 올라와 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라서 붙이는 일은 없다. 자를 시간에 아이들은 서로의 눈을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하루에 5~6시간 있는 수업을 모두 이렇게 진행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거의 한 달째 퇴근 출퇴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준비를 해대는데, 아직 성에 차게 준비가 되었다 싶은 적이 없을 정도다.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때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참여하는 이런 수업을 하고 나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언제 다시 물어도, 학생들이 이전에 학습한 내용을 술술 대답한다. 차마 쉽게 놓을 수가 없다.  




나만의 작품전


학습 과정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평가'다. 초임 때는 수업 시간 40분을 알차게 채우는 것에 급급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했다. 평가 그 자체의 행위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평가 이후에 이어졌어야 할 피드백이 문제였다. 결과가 환류되어야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올해는 피드백에 힘을 쏟고 있다.



아이들은 손수 자신의 작품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작품을 다. 같은 활동을 했는데 서로 다른 결과물을 보며 아이들은 성장한다. 따라 하고 싶은 점, 수정할 점 등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한다. 피드백이 꼭 교사에서 학생에게로, 일방향적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1인 1역으로 소속감 느끼기

3학년들이 맡을 수 있을만한 귀여운 역할들이다. 꼼꼼 대장, 도장지기 같은 귀여운 이름은 필수! 우리 교실에서 필요한 역할을 스스로 찾아보는 건 5~6학년쯤 되어야 할 수 있다. 리 교실에 필요한 역할을 소개하고, 지원서를 받았다. 아이들은 1~3 지망과 그에 역할을 지원하는 까닭을 적었다.


내가 도맡아 했다면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을 역할들인데, 아이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아무래도 학급 임원선거 이후라 더 열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실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생긴 것이다.




교사는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하는 기회를 수 없이 갖는다. 특히 매년 초, 나는 어떤 이를 만났을 안정을 얻는생각한다. 또 누군가 싫었다면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떠올린다.


나는 표리부동한 사람이 어려웠다. 앞에서는 하하 호호하다가 뒤돌아서서 다른 말을 할까 싶어 마음이 불안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속내를 읽어 내는 게 힘들었다. 차라리 싫은 소리도, 어려운 부탁도 터놓고 했을 때 마음이 편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되고 싶다. 예상치 못한 톡톡 튐으로 재밌는 사람이 되기보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해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길 택한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유연한, 그렇지만 분명한 선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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