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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15. 2024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버스는 다양한 인간을 싣고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대학교 입학 전 쌍수, 수능 직후 면허 따기가 그런 일 아닐까. 나의 경우 하나는 했고, 하나는 못했다. 그래서 여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면허를 따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완전 사회초년생일 때는 '차는 돈 먹는 하마'라는 말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자취와 통근  자취의 손을 들어줬다.


 카페에서 책을 읽다 대학원으로 향한 날이었다. 내 등만큼 큰 백팩에 동기와 나눠 먹을 햄버거, 책과 노트를 넣은 상태였다. 그리 무겁지는 않지만 부피는 꽤 두툼한 핑크 가방을 안고 버스 좌석에 앉았다.


  버스에 올라서는 빠르게 자리를 살핀다. 기왕이면 혼자 앉는 좌석이 좋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하차 태그를 찍기 편한 자리가 좋다. 또, 30분이 넘는 긴 노선이었다면 창가 자리가, 15분 만에 빠르게 내려야 하는 거리는 복도 쪽 좌석이 편하다. 아무래도 큰 백팩을 짊어지고 옆사람을 지나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선호도와 관계없이 '그저 빈자리'에 앉게 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다행히 하차 단말기와 가까운 복도 쪽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임신 20주가 지나고 확연히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매사 불편함이 느껴졌다. 시내를 거쳐 앞산 쪽으로 가는 노선이라, 시내를 지날 때는 사람이 많아질까 걱정되기도 했다. 나름 인기노선이랄까. 겨우 다섯 정거장이지만 자리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두  정거장이 지나고, 옆자리 사람이 내렸다. 내리는 사람만큼 타고, 타는 사람만큼 내리는 그런 노선과 시간대였다.




  사이 소녀는 내 옆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 6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부부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2-통로-2' 구조였다. 내 자리를 기준으로, 통로 옆 자리는 빈 좌석이었기에 아내분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금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고, 남자 어른은 대뜸 말을 시작했다.


"아니, 옆 자리가 비었으면 알아서 옆으로 갈 것이지 이 아줌마가.(구시렁구시렁)"


 듣다 보니 여기서 아줌마는 나고, 문제는 옆 자리로 째깍째깍 옮기지 않았다는 건데.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정신 차리고는 괜히 대꾸하지 말자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끓었다. 빈자리에 가방을 둬서 사람을 못 앉게 한 것도 아니었고, 이미 옆엔 버젓이 사람이 앉아 있는데 뭘 더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아줌마라니. 백팩을 메고, 후드집업을 입었는데 아줌마라고 칭하는구나. 내가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네 따위의 감상에 젖은 게 아니었다. 듣는 이를 폄하하기 위한 대명사로 아줌마라고 했다는 데 불쾌했다. 남은 정거장은 두 개뿐.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했다.


"어르신, 안으로 들어가기 불편하니 옮겨 앉으라 하셨으면 그랬을 겁니다."


 대뜸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줌마라고 한 그에게 더욱 예의를 갖춰서 얘기했다. 나잇값 못한다 비아냥 거리듯 들리지 않게 최대한 정중히 말을 꺼낸다고 애썼다. 그런데 속뜻을 간파한 건지, 그 어른은 길길이 열을 올리셨다. 이제는 '지가 잘못해 놓고', '이 가씨 나가. 내가 너한테 가 씨 나라고도 못하나'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듣다 듣다 "밀씀 조심해 주세요"라고 얘기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암요. 못하죠. 제가 얼마나 귀한 딸이고 사랑받는 아내인데요. 감히 누가 어떤 누구에게 이 놈 저 놈, 이 사내아이, 저 가 씨 나라고 해도 될까요...! 내리고 나니 억울함이 더 밀려왔다. '아놔. 지금 내려야 돼서 내렸는데, 쫄아서 내린 건 줄 아는 거 아니야?' 그래서 더욱더 목적지로 당당하게 향했다. 아무도 창 밖으로 내다보진 않겠지만, 더 보란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오늘 똥 밟았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여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게 신기한 일일지도 모른다. 버스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싣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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