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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Apr 06. 2024

다시 찾은 경주, 벚꽃 마라톤

이걸 올해도 뛸 줄이야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해에 시작된 도전이다. 여대생 열댓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경주 마라톤을 신청했다. 그 이후로 몇 년째,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매년 마라톤 10km에 도전하고 있다. 경주에서 시작한 마라톤 열정이 대구와 울산을 거쳐 다시 경주로 돌아왔다.


 처음은 우리끼리, 그 후에는 각자 지인. 야금야금 불러 모았다. 그 덕분에 올해는 동기의 고향 친구, 그리고 오랜 남자친구가 등판했다. 점점 더 판이 커지고 있다.


 

 대회 당일 5시 50분에 출발했다. 대구에서 경주까지 신나게 달려 7시에 도착했다. 그런데 IC 내리면 있는 경주의 미소(=내가 지은 이름) 조형물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도 겪은 일이지만 체감상 올해 더 심했다. 경주 마라톤의 위상이 높아진 건지, 마라톤의 인기 때문인지 참가자가 훨씬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초심자에게 경주 마라톤은 꽤 난코스다. 5km 지점에 있는 경사로에서 걷는 사람이 속출한다.  


 오늘의 큰 교훈
: 마라톤 대회 며칠 전에는
하체 운동 하지 말자(ㅋㅋㅋㅋ)'


 잘하지도 않던 엉덩이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다리로 뛰는 게 아니라 다리'님'을 친히 옮겨드려야 하는 느낌이었다. 5km에서 그만둘까, 여기서 기분 좋게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올해도 함께 마라톤 뛰러 가자고 얘기해 준 친구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 같아 꾹 참고 뛰었다.


 아마 출발 전에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요즘 너무 피곤했다는 이유로, 몸 상태가 안 좋았다는 핑계로 쉽게 포기했을 것 같다. 친구 덕에 강남, 아니 완주했다.

 잔치국수 맛집은 마라톤 대회다. 어디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먹던 국수 맛을 못 잊어서 이제 내가 뛰고 있다. 음식도, 운동도 엄청난 매개체인 것 같다.


 잔치국수에 관한 웃픈 일화가 있다. 첫 해에 경주 마라톤을 뛰러 왔을 때는 당일에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제공되는 국수 양이 정해져 있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살던 나는 국수가 빨리 오는 사람에게만 주는 부상인 줄 알았다. 3km까지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고, 걷고 하다가 국수가 먹고 싶어 혼자 냅다 달렸던 기억이 난다.


 하물며 홀로 두 그릇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주최 측에서 인당 한 그릇 분량으로 준비한 걸 알고 꽤나 죄책감을 느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올해는 깔끔하게 한 그릇만 먹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호흡을 되찾으니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마라톤을 뛰면 주변 사람들과도 괜스레 전우애가 생긴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기념할 순간을 축하하며 사진을 찍어주는 것. 이렇게 소소한 순간 사이사이 소속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한국인 특유의 상향평준화 된 사진 찍기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작년 대구 마라톤에 비해 1분가량 늦게 들어왔다. 그래도 코스가 어려웠고,  최근에 유산소 운동도 안 한 걸 감안하면 만족스럽다. 우스갯소리로, 일 년 사이 1분 정도 노화 했으면 선방했다는 얘기를 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나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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