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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19. 2024

우주의 구조 -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1장.


이 글은 [우주의 구조 : 브라이언 그린] 1장 탐독기입니다.


브라이언 그린(이하 브라이언)은 청소년기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카뮈는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면, 과학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두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고, 이는 엉뚱하게 들렸다. 브라이언은 당시 물리학자를 꿈꾸고 있었기에, 인생의 궁극적 무대인 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의 내부에 살면서 지구의 표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 인간의 진화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촉각 이외의 감각기관은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면? 인간의 감성과 지성이 다섯 살 이후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이 세상은 우리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어린 시절, 그는 자주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 책을 들어서자마자 보인 글이었다. 이것은 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이어 말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진리라는 개념은 가히 혁명적으로 변하면서 온갖 철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졌다면, 지금의 철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을 만든 것은 이 모든 우주의 신비이며, 철학적 사고 이전에 물리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니 철학과 진리를 논하자면 과학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카뮈는 물리적 질문을 인간의 삶과 분리하여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물리적 질문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어, 카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형이상학적 문제』들도 그 근본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물리적 실체에 도달한다고 했다.


나는 브라이언의 의견에 크게 동의한다. 물론 사고와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인생의 그 무엇도 물리적 실체에 근본 한다.


여기서 내가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나는 전부터 시지프스의 형벌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이었다. 시지프스는 영원히 바위를 굴리게 되는데, 바위는 굴리다 보면 마모되고 닳아 없어지는 것이 진리이다. 물리적 법칙과 현실적인 관점에서 시지프스의 형벌을 재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지프스의 형벌은 실제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바위가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마찰과 충격으로 인해 점차 마모될 것이다. 표면이 깎이고,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바위의 크기와 무게는 줄어들 것이다. 지속적으로 마모되면, 결국 더 이상 굴릴 수 없는 작은 크기로 줄어들 것이다. 이는 시지프스의 형벌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브런치 글 [시지프스 형벌에 대한 새로운 해석] https://brunch.co.kr/@viviennegray/46​ [누르면 이동합니다.]​


결국 나의 해석은, 고통은 영원하지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카뮈는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도 생존의 의지를 잃지 않는 한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한 희망에 물리적 실체는 무엇이었나. 나는 여기에 물리적 실체를 근거하였다.


물론 시지프스 신화는 현실이 아니다. 실존주의적 표현으로 형벌을 부조리한 삶의 상징으로 보았고,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철학은 세기를 지나서도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신화라는 점에 있어서, 나처럼 현실적인 측면만 따지면 어차피 그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조차도 없다.)


그러나 내 관점도 전혀 틀린 관점은 아니다. 대신 두 해석이 서로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과학적 현실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어떠한 현상(시지프스의 신화처럼)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고통과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 읽었던 『코스모스』라는 책에서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과학보다 철학에 더 가깝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물론 엄청 재미있고 어렵기도 해서 두 번 정독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아직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았고, 이 책의 1장에는 『철학적인 내용은 가급적 언급을 피하겠다.』라는 말이 있지만, 과학과 철학은 결코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책은 과학과 동시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번역도 굉장히 잘 되어 있어, 읽기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술술 읽혔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온종일 읽고 싶은데 어린 아들이 있어서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1장에서, 『이 책의 목적은 시간과 공간의 진정한 모습과 그 결과로 나타난 이 우주의 실체를 가장 최신 버전의 물리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간과 공간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큰 과제이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을 단순하게 여겼다. 그는 삼라만상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무대가 곧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불변하며, 이로부터 구성된 우주 역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견고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게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는 물리적 실체였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서로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고,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는 결과를 얻었다.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한 객체의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며, 우주의 진화 과정은 시간과 공간의 비틀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이론의 출현으로, 시공간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역동적 개념으로 수정된 것이다.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에딩턴 경은 시간에 대해 『시간의 화살』 로 설명했다. “시간의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사건은 특정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시간의 비대칭성) 식탁에서 떨어진 계란은 바닥과 충돌하며 깨지지만, 다시 붙지는 않는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촛농이 흘러내리지만, 촛농이 다시 올라가 양초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과거만이 담겨 있을 뿐,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살면서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세월과 함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은 없다.” 이다음 내용은 이렇다. — 지금까지 알려진 물리학 법칙에 의하면 시간은 굳이 한쪽 방향으로 흐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미래로만 흐른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런 기초물리학과 일상적인 경험 사이에 초래된 불일치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기에 1980년,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는 이론이 모든 의문을 풀어줄 후보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난제에 부딪혔다. 이 이론을 해결하려면 거대한 물체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빅뱅 후 몇 분의 일초 정도 지난 작은 단위를 다룰 때는 양자역학이 필연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둘을 섞어 놓으면 거의 재난과도 같은 일대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새롭게 대두된 이론이 『통일장이론』이다. 이 문제에 도전장을 던진 과감한 물리학자들이 있다. 그들이 성과 낸 것이 『초끈이론』이라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물리학자들은 모든 만물이 작은 입자들(전자,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점의 형태이다. 그러나 초끈이론이 주장하는 바는 전혀 다르 다. 전자와 쿼크, 소립자의 기본적인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입자들이 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모든 입자는 가느다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끈은 진동하는 형태에 따라 다양한 입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만일 초끈이론이 맞는다면, 우주의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 9차원, 10차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6차원, 7차원 등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즉, 초끈이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초끈이론은 틀린 이론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론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는 내용에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과거만이 담겨 있을 뿐,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부분이 머리를 맴돌았다. 감성과 이성이 한 번에 들쑤셔졌다. 미래를 기억이라고 표현하다니, 아니, 만약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정말 단지 안 보이는 거라면? 아니, 볼 수 있게 된다면? 조금 슬픈 마음도 들었다. 미래로만 흘러가는 삶, 한번 지나고 나면 닿을 수 없는 과거, 유한한 미래…


지금까지 서술한 것은 이 책 1장의 부분 부분을 발췌하거나, 내 생각을 보탠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다룰 것과, 더 많은 이론을 이야기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말 술술 읽히고 재미있어서 앞으로의 내용이 기대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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