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온도가 바람을 타고 들어와, 옷 속을 누비려 하는 나날이다. 실날같은 틈만 찾아도 들이미는 바람은 봄과 여름의 것과는 달리 원망스럽다. 바람이야 변한 게 없을텐데도 계절의 변화는 뚜렷하여 바람을 타고 땀을 날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오들오들 피하고만 싶다. 사람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온도라는 말은 이제 흔히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뜨거우면 열정적이고, 차가우면 식어서 냉랭한 기운이 도는 걸 담는 말이다. 사랑을 할 때도 자주 쓰이는 상투적인 말로, 마음의 온도가 달라서 그래란 말이 있다. 누군가는 사랑에 푹 빠져서 성급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그 정도로 마음이 달궈지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도 속도도 달라서 부딪치고 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데도.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표현한 영화도 본 적이 있다. 초반에는 뜨겁다가 후반에 가면 사그라드는 게 일반적인 연인 관계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아직까지는 그 말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아주 오래 만난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남자친구가 연인이 된지는 오늘로 265일이다. 진정한 연애가 시작되는 건 200일 이후부터란 말도 있는데, 아직까지 설레고 좋은 걸 보면 우리에게는 200일보다 좀 더 긴 기준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설레고 좋은 감정이 조금도 줄지 않아서 아무래도 일반적인 연애 관계로 접근하면 나의 사랑은 고장이 난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만난 걸 돌이켜보면 연인이 되는 과정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오히려 초반에는 설레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좋은 와중에도 한 줄기 낯설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까 아주 작은 그런 게 이해로 바뀌면서 점점 편안하고 밀착이 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있는 게 감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크기도 온도도 비슷한 것을 느낀다. 잔잔하고 다정하고, 통통 튀면서 장난을 걸기도 하는 모든 것들이 익숙해서 안정적이다.
우리 마음의 온도는 아주 서서히 따뜻해지고 있다. 처음부터 따뜻하게 시작했지만, 매일이 지나면서 0.005도씩 더 이해하고, 사랑하고 푸근해진다. 그렇게 천천히 사랑을 키워가는 게, 성장하는 우리의 사랑을 보는 게 즐겁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고 있다. 벌써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달라지는 날씨에 따라 할 수 있는 만남의 방식이 다채로워지는 걸 느낀다. 연말이 되면서 크리스마스의 설렘도 커지고, 한 해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화려하고 부드러운 빛무리들이 우리 손아귀에 잡힐 것 같다.
우리 사이의 바람은 말씨를 닮았다. 사람이 어떤 말을 선택하고 하는지에 따라서 그 언어는 다정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칼날처럼 변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칼날을 내세우지 않는 건,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씨를 골라서 주는 건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사람이 가진 마음은 보기 어려운 것이고, 그 마음을 전달하는데 있어 고운 말은 필수적이다. 어느 말 하나도 실수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애써서 고르는 건, 항상 계절에 맞게 때로는 시원한 바람, 따뜻한 바람을 보내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사랑하는 데에도 우리 자연의 모습이 깃들어, 이토록 크고 아름다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