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남동생 김치/여동생 배드민턴 파스타/마들렌
첫번째 이야기: 경동시장
어머니의 눈이 좋지 않다. 엄마는 오랫동안 백내장을 앓고 계시고, 수술을 하지 않으셨다. 수술을 권장드린 적도 있었지만 엄마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그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아마 병원에서도 꼭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한 건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가 눈이 너무 좋지 않고 건조하고 아파서 안과에 갔더니 각막염이라고 했다. 각막염이라니, 놀랍고 걱정이 되었다. 안과에서 오래 되었다고 했다. 만성이 될 정도로 각막염을 오래 달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백내장인 줄 알고 그냥저냥 사신 건데 얼마나 눈이 불편하고 아프셨을지, 마음이 안 좋았다.
엄마와 그렇게 통화를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전에 선생님께 배웠던 생활한방 책을 펼쳐 보았다. 눈에 관한 한방차는 본 적이 없던 기억이 있었고 목차를 펼쳐 봐도 찾기 어려웠다. 하나씩 책을 펼쳐 보다가 마리골드 차라는 것을 발견했다. 눈을 밝게 해주는 차였다. 재료는 구기자, 마리골드, 결명자, 석결명, 국화였다. 비율도 적혀 있었고 눈에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처음에 차를 끓여드린다고 제안했을 때 엄마가 거절했다가 구기자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자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엄마는 눈이 안 좋으면 구기자 차를 마시고 계신다고 했고, 그래서 같은 재료가 들어가서 익숙하신가 보다. 눈이 너무 뻑뻑하고 아플 때 구기자 차를 마시면 좀 풀린다고 하셨는데, 이 재료들을 섞어서 만든 뒤에 좀 눈이 좋아지시면 좋겠다.
선생님께 아직도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평생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약재 사용법을 배운 것이다.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이 그립다. 나는 언제까지나 선생님의 제자이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불살라서 나를 가르치고 떠나신 걸 알 것 같다. 내가 마지막 제자였다. 언젠가 선생님의 자녀분을 만나게 된다면 꼭 이 은혜를 갚고 싶다. 선생님 자녀분의 이름은 굉장히 특이해서 내가 잊지 않을 수 있다.
두번째 이야기 : 남동생의 김치
우리 남동생은 밥을 많이 먹는다. 밥도 많이 먹고 과일도 엄청 많이 먹는다. 과일을 한아름 사다 놓아도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 그리고 어제 김치를 사놓았는데 집에 와 보니 김치가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여동생에게 이것 봐라 김치 어제 샀는데..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방에서 들었나보다. 왠지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내가 눈치주고 먹는 걸로 구박하는 걸로 느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먹는 게 귀엽고 놀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인데도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김치를 두 배로 사왔다. 맛있는 김치, 남동생이 먹고 싶은 김치를 원없이 먹게 하고 싶다. 김치가 얼마나 맛있었으면 하루만에 바닥을 보일 정도로 먹었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많이 먹는다고만 생각한 내가 미안하다.
세번째이야기: 여동생과 배드민턴 그리고 파스타
여동생과 배드민턴을 쳤다. 나는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께 배드민턴을 배웠다. 드라이브, 스매시, 하이 클리어 등의 기술을 잘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여동생이 저번에 나와 배드민턴을 치고 굉장히 재미있었나 보다. 괴물이랑 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자기 수준보다 내가 훨씬 높으니까 오기도 생기고 즐거웠나보다. 내가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경동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배드민턴 칠 수 있냐고. 시간이 애매했다. 집에 갔다가 가기는 어려웠다. 출근도 해야 하니까. 하지만 바로 체육관으로 향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운동화를 신고 나왔었고, 체육관에 들어가니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쳐지지 않았다. 자꾸 빗맞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계속 팔을 성실하게 높이 들고 있자 다시 내 실력대로 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치지 하는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잘 쳐졌다. 내가 운동을 잘 하는 게 신기하다.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시원하게 공이 나가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사실 배드민턴을 치기 전에 일이 좀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학원의 한 어머니께서 컴플레인을 세게 걸었고, 그냥 불만사항이고 특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많이 힘들었다. 그러고 우리 엄마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조금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해서 다시 문자로 말씀드렸더니, 좋게 받아들여주셨다. 해결된 건 맞는데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다. 안좋은 감정을 쏟아내고 그걸 후에 해결한다고 해도 받는 사람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여동생에게도 내가 예전에 내 감정대로 행동했을 때 네가 힘들었겠다, 했다. 아무튼 그래서 멘탈이 좀 흔들리고 무너진 상황이라서 배드민턴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치니까 원래 실력대로 돌아왔고 즐겁게 기술을 쓰면서 잘 칠 수 있었다. 1시까지 치기로 했고, 그때까지 8분 남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몸은 지쳐 있는데 어떻게든 마지막을 불태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쳤다. 그래서 시원하게 끝낼 수 있었다. 운동하고 나니 활력도 돋고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여동생이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생토마토도 들어가고, 올리브 오일도 넣은 것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칠맛이 있었다. 계란후라이도 올려주었다. 예전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길리안이 해준 파스타 맛이 났다.
네번째 이야기: 마들렌 텅장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에게 줄 마들렌을 샀다. 작년에 크리스마스 시즌 때 쓸 큰 빨간 양말 세 개를 사두었다. 그건 내 어릴 때 추억이다. 독일에서 가져온 빨간 양말이 있었고 그 안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들어 있는 건 내 어릴 때의 보물같은 기억이다. 그래서 양말 안에 12월 동안 가끔씩 간식을 넣어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마들렌이라면 프루스트의 글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글. 진심으로 좋은 글이다.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나의 실력에 감사하며 그 향취를 이 마들렌에 담아 가족들에게 건네고, 향긋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