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11시 우리의 평온은 산산조각났다.
국민들의 일상은 무너지고 나라의 안위와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렸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이로써 나는 1979년과 2024년, 두 번의 비상계엄령을 경험한 세대가 됐다.
79년도에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나이라 그런게 있었다는것도 나중에 커서 학교 다니며 배웠지만 살아생전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질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서 이번 일이 더 믿어지지않고 당혹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날밤 누군가 누르지 말아야할 되감기 버튼을 눌려 민주주의를 과거로 되돌려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뉴스를 보면서 나는 8-90년대 당시 신촌을 지나며 봤던 대학생들의 시위와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떠올렸다.
정치에 대해 무지한 나지만 이번 비상계엄령이 잘못 된것이라는 것에는 단 1초의 의구심도 없었다.
국민들은 도탄에 빠지고 일상은 삭막해졌으며 수많은 국민들이 제 2의 비상계엄령이 내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더이상 두고볼 수 없던 국민들은 탄핵 가결을 열망하며 여의도 촛불집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평소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큰딸은 조용히 자신이 제일 아끼는 가수의 응원봉을 꺼내더니 가방에 비상 간식과 작은 보온물병, 방석을 챙겼다.
집회에 참석할 거라고 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두툼한 내복 한 벌을 찾아주고 핫팩을 건네주는 것, 응원봉을 든 손이 시릴까봐 급하게 챙겨준 검은 목장갑이 다였다.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나 집회가 과열되거나 사람들이 너무 밀집해서 위험할 것 같으면 빨리 그 곳을 빠져 나왔으면 좋겠어. 엄마는 나라도 중요하지만 네가 더 중요해.“
수많은 국민들이 손에 촛불과 저마다 집에서 가장 빛나는 불빛을 들고 모여들었다.
수년전 종이컵에 위태하게 흔들리던 촛불을 들고 모여있던 국민들이 이제는 바람에 꺼지지 않는 빛을 들고 어둠을 밝히러 나온 것이다.
이번 집회에 젊은 청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것은 많은 어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응원봉을 흔들며 아이돌 노래를 틀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축제처럼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을 보며 진지하지 못하다, 혹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참가하는거냐는 순수성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과 비아냥도 일부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어리숙하지 않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발적으로 묻고 판단하며 본인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세대다.
그들에게 응원봉이란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연예인, 가수의 분신이자 상징이다. 먼지 한올, 흠집 하나 날까 상자도 버리지 않고 그 안에 고이 보관한다.
그런 소중한 응원봉을 집회 참가자에게 빌려준다는 건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어주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또한 본인이 사랑하는 연예인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나온다는 것은 일부 어른들이 생각하는 치기어린 행동이 아니라는걸 알아주길 바란다.
누군가 이러다 응원봉이 망가지면 어쩌냐고 걱정 섞인 말을 하자 “나라가 망하면 이 응원봉 다시 쓸 일도 없어져…”라고 말한 것이 SNS상에 회자되어 수천명의 좋아요를받았다.
그들은 말그대로 진심이다.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면 자신의 일상도 미래도 더 이상의 덕질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우리의 청춘들은 더이상 부당한 것에 숨지않는다.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세대다.
누군가의 말처럼 집회에 참가한 우리들의 청춘들이 응급차가 아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배우 최민식님의 말처럼 젊은 청춘들에게 어른들이 미안하다.
부디 이런 일을 다시 겪게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