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부르주아에서 이 미레, 예술로 이어진 런던의 시간
템스강(Thames) 위, 런던 브리지에 서서 도시를 바라보면, 마치 오래된 역사 속에 서 있는 듯하다. 런던 브리지의 역사는 곧 런던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기 50년경,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점령하고 런디니움(Londinium)을 세웠을 때, 그 중심에는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남쪽의 습지 사우스워크(Southwark)와 북쪽의 도시를 잇는 그 다리 아래에서, 런던은 태어났다.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다리의 노래
로마인들이 세운 목재 다리 이후, 다리는 수차례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존 왕(John, 1196–1216) 시대에는 돌다리가 완공되었고, 그 위에는 교회와 주택, 상점이 들어서 ‘다리 위의 마을(Bridge Town)’이 되었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런던 브리지가 무너지고 있네…
오랜 영국 동요 속 반복되는 이 구절은 다리가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런던의 시간을 말해준다. 무너짐은 두려움이었지만, 다리는 언제나 도시의 회복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다.
1666년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 때도 다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나, 세월과 홍수, 배의 통행으로 손상되었다. 1831년, 건축가 존 리니(John Rennie)가 새 석조 다리를 완성했으나, 1968년 미국 애리조나로 이전되어 지금은 Lake Havasu City에 서 있다. 오늘날의 런던 브리지는 1973년에 완공된 콘크리트 다리로, 단단하고 단순한 모습으로 매일 수십만 명을 맞이한다.
타워 브리지, 빅토리아 시대의 힘과 기능이 깃든 다리
런던 브리지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템스강 위에 우뚝 선 타워 브리지(Tower Bridge)를 만난다. 많은 이들이 이 다리를 런던 브리지로 착각하지만, 두 다리는 시대도, 성격도 다르다.
타워 브리지는 1894년, 빅토리아 시대에 완공된 도개교이자 현수교다. 당시 런던은 세계 최대의 항구 도시였고, 템스강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상선과 증기선의 통행이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해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산업의 관문으로 설계되었다.
타워 브리지, 여전히 열리는 다리
두 개의 고딕 양식 탑은 장식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는 실제로 거대한 기계 장치가 들어 있다. 배가 지나갈 때 중앙의 다리가 천천히 들어 올라가며 길을 열어준다.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130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로 열리는 도개교(bascule bridge) 로, 하루 두세 번씩 열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리는 여전히 도심과 강을 잇는 교통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정교한 공학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다리는 이제 런던의 상징이 되었다.
사우스워크, 강 건너의 또 다른 런던
런던 브리지가 강을 잇자, 템스강 남쪽의 습지 사우스워크(Southwark)는 런던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왕의 법이 닿지 않는 자유의 땅, 술집과 여관, 극장과 시장이 뒤섞인 즐거움의 거리였다.
16세기 후반, 런던 시내에서는 도덕적 이유로 연극이 금지되었지만 수많은 극단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 결과 세워진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산업혁명 이후, 사우스워크는 창고와 공장, 선착장으로 변했고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밀집했다. 찰스 디킨스의 <리틀 도릿(Little Dorrit)> 속 마샬시 교도소(Marshalsea Prison) 역시 이 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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