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꽃울 피운 메디치 가문
가장 오래된 미술관의 하나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Galleria degli Uffizi)은 메디치가에서 수집한 로마의 조각품과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걸작을 소장해 이탈리아의 피렌체 방문 시 반드시 들르는 미술관이다.
가끔 찾아오는 작은 행운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피렌체에 머문 3월의 한 주간이 마침 문화주간이라 모든 공공미술관의 입장이 무료였다.
중세 피렌체의 상권을 좌지우지했던 가문은 토스카나 지방의 부호였던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이었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산 로렌초 성당 역시 메디치가의 전용 성당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에서 큰 부와 권력을 지닌 가문으로, 상업과 은행업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다.
메디치는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와 많은 예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다 빈치, 보티첼리 같은 거장의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미술과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후원으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메디치 가문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두 명의 교황(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을 배출했으며, 유럽 왕실과도 혼인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피렌체의 도심 곳곳 건물에는 방패에 원이 그려진 메디치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사무실’또는 ‘관청’을 의미하는데 원래 이 단어는 우피치 미술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피치 미술관은 1560년대에 코시모 1세 데 메디치(Cosimo I de’ Medici)의 요청으로 르네상스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설계했는데, 원래 피렌체의 행정관, 판사, 기술자, 상인들의 사무실로 설계되었다.
U자형 건물을 짓기 위해 산 피에르 스케라조(San Pier Scheraggio) 교회와 같은 여러 건물이 철거되었다. 조르조 바사리가 1574년에 사망했을 때, 아직 완성되지 않아 두 명의 건축가가 작업을 이어받아 마무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건물은 메디치 왕조의 방대한 예술품과 고대 조각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건물의 최상층은 피렌체 통치 가문과 그들의 친구, 손님들을 위한 개인 갤러리로 변모하였으며, 고대 조각품, 미술품, 공예품 등 왕조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등 메디치가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한 것이 우피치미술관의 시작이 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멸망 이후 피렌체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미술관에 있던 예술품들이 빈으로 옮겨질 뻔했으나, 마지막 공작인 아나 마리아가 유언을 통해 피렌체에 이 컬렉션을 기증하였다. 1769년에 우피치 미술관은 일반 대중에게 박물관으로 공식 개장되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르네상스 미술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소장품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작품들을 아우르며,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중점을 두고 있어 예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기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문화적, 예술적, 지적 부흥 운동으로, ‘재탄생’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철학, 과학 등을 부활시키며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강조하는 인문주의(Humanism)를 발전시켰다. 이 시기는 특히 미술, 건축,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이루어졌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단테, 갈릴레오와 같은 거장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예술적 표현을 새롭게 탐구하고, 과학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확장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특히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이 중심지가 되었다. 이 운동은 나중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근대 유럽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특히 우피치 미술관을 설계한 조르지오 바사리는 건축 뿐 아니라, 예술사가로서 미술가 열전(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이라는 책을 통해 미켈란젤로, 다 빈치, 라파엘로 등 당시 유명 예술가들의 전기와 작품 분석을 자세히 기록하여,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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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은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코린토식 기둥이 특징인 ㄷ자 형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은 두 개의 긴 건물이 연결되어 가운데에 넓은 중정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중정은 아르노 강 쪽으로 열려 있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취해 한참을 서 있게 된다. 중앙 중정을 둘러싼 건축물은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과도 조화를 이루며, 외부에서 보면 독특한 형태이다.
베키오 궁전에서 피티궁전(Palazzo Pitti)까지 이어지는 긴 복도인 바사리 회랑(Vasari Corridor)은 건물의 두 측면을 연결하며, 벽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이탈리아 예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메디치 가문의 고대 조각과 흉상 컬렉션도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 원본의 복제본인 고대 로마 조각들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를 많이 전시하고 있었는데 유화가 나오기 이전에 템페라(tempera)라는 안료를 쓴 작품들이 많았다. 템페라(Tempera)는 고대부터 사용된 회화 기법 중 하나로, 물감의 바인더(접착제)로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는 덕분에 색이 선명하고 오랫동안 변색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템페라 기법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럽 회화의 주요 기법이었는데, 빠르게 건조되고 정교한 세부 묘사가 가능해 중세와 르네상스 초기의 종교적 아이콘이나 성화에 많이 쓰였다. 르네상스 시기에 유화 기법이 발전하면서 템페라 기법은 점차 사용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회화 기법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미술관은 현재 50개의 방에서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비너스의 탄생> , <봄> 등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작품 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사진 찍기도 힘들 정도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가 키프로스 섬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템페라 기법이다. 비너스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 제피로스와 아우라에 의해 섬으로 밀려오며,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다. 젊은 여신이 그녀를 맞이하며 꽃이 흩뿌려진 망토를 건넨다. 이 작품은 사랑과 미의 상징인 비너스를 찬미하며, 메디치 가문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가 있어, 메디치 가문이 그림을 의뢰했을 가능성이 크다.
보티첼리의 <봄>(Primavera)은 고전 신화 속 아홉 인물을 꽃이 핀 들판과 오렌지, 월계수 숲을 배경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포옹하며, 클로리스는 플로라로 변신한다. 중앙에는 비너스가 서 있고,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쏘며, 세 그라치아는 춤을 추고, 메르쿠리우스는 구름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포플러 나무판자에 그려졌으며, 15세기말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 가문의 집에 걸려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Annunciation)는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성모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약 1472년에서 1475년 사이에 그려졌다. 이 작품을 비롯한 메디치가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한 것이 바로 우피치미술관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왼쪽에, 성모 마리아는 오른쪽에 있으며, 마리아는 책을 읽다가 소식을 듣는 순간을 담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르네상스 특유의 섬세한 자연과 건축 요소들이 강조되어 있고,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은 평온하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뛰어난 세부 묘사 능력과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통해 인물들의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Doni Tondo)는 그의 유일하게 완성된 이젤화로, 원형의 형태를 가진 작품이다. ‘톤도‘는 이탈리아어로 ’원형‘을 뜻한다.
<도니 톤도>는 성가족(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성 요셉)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성가족 묘사 중 하나이다. 성모 마리아는 다소 역동적인 자세로 아기 예수를 안으려는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성 요셉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림의 배경에는 나체의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약과 신약의 대조를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이 작품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적 표현력과 강렬한 신체 묘사, 그리고 명암의 대조를 볼 수 있다. 이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서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특유의 표현 기법이다.
이 외에도 조토의 <오니산티의 성모>,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이중 초상화>등이 하이라이트로 꼽히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 거장들의 작품이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어 예술의 변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메디치 가문의 유산은 우피치 미술관등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