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아말피 해안
우선순위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두 곳의 해안길이 있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푸른 지중해, 그 옆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해안길이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곳, 이탈리아에 위치하는 아말피 해안(Amalfi Coast)과 친퀘테레(Cinque Terre)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절벽 도로 아말피 해안(Amalfi Coast)을 먼저 소개해본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주 살레르노(Salerno) 지역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 중 하나로 꼽히는 아말피 해안은 나폴리(Napoli)에서 남동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시칠리아 여행을 팔레르모에서 마치고,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15유로(약 2만 원)에 건진 모자 뒤로 보이는 곳이 어딜까.
나폴리에서 아말피 해안으로 향하기 전에 꼭 가고 싶던 폼페이 (Pompei)다. 그런데, 지금은 이탈리아인이 살고 있는 신시가지를 폼페이라 하고 유적이 있는 폼페이는 스카비 디 폼페이(Scavi di Pompei, 폼페이 발굴지)라 부르므로 유적을 보려면 역을 잘 찾아가야 한다.
로마 시대인 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도시 폼페이는 79년 8월 최후의 날을 맞았다. 베수비오화산(Mount Vesuvius)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도시 전체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인 1592년에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가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작품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지하 도시가 무엇인지 잘 몰라 무시했다.
1709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고대 로마 양식의 건축물과 대리석 조각상을 발견하자, 나폴리 왕국의 왕 카를로 3세는 1738년부터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을 시작으로 1748년에는 폼페이 발굴을 명해 드디어 유적이 드러났다
폼페이 유적울 학문적으로 연구한 독일의 고고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은 1755년 유럽 전역에 예술적, 역사적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폼페이 사람들은 화산 폭발 시에 순식간에 몰려온 화산재 속에, 생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 그대로 파묻혔다. 찰스 디킨스는 <Pictures from Italy>(1846)이라는 이탈리아 여행 기행에서 폼페이 유적과 화산재 속 시신을 ‘멈춰버린 시간 속의 비극적인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비명이, 신음이, 갑작스러운 몸부림이… 모든 것이 끝났다. 그들의 구조 요청은 헛되었고, 몸부림은 무의미했으며, 마지막 숨결조차 희망이 없었다.
- 찰스 디킨스 <Pictures from Italy>
그런데,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시체가 분해되어 사라진 모습들을 되살리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분해되어 생긴 빈 공간 내부에 액체 석고를 천천히 주입한 후 완전히 굳으면 주변의 화산재를 제거해 당시 마지막 순간 그대로의 형체를 만드는 ’ 석고 주형 기법(plaster cast technique)’ 으로 186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감싸 안은 어머니, 도망치다 쓰러진 남성,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등 2,000년 전 재앙의 참혹한 모습이 석고 주형으로 복원된 모습들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폼페이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가장 잘 보존된 “시간이 멈춘 도시”인 것이다.
서쪽 출입문이던 마리나 문(Marina Gate)과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광장(포룸, Forum), 목욕탕, 원형 극장(Amphitheater) 등 옛 시가의 3분의 2가 현재 드러났는데, 많은 유품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당시 전성기 로마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준다. 걸어서 다 둘러보는데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체력, 바로 건강이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에로틱한 벽화와 조각상으로 고대 로마사회의 개방적인 성생활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사실적인 성행위 모습을 그린 춘화 벽화가 걸린 사창가 ‘루파나레(Lupanar)’는 당시 로마 사회의 성매매가 합법적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용인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곳곳에 보이는 남근 조각(Phallus, 팔루스) 들도 행운, 번영, 건강을 상징하는 보호 부적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가장 놀라운 광경에 도취되어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도 이곳, 해안, 만, 베수비오, 성채, 빌라 등 모든 것을 묘사하기에는 부족하다.
-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쓴 <이탈리아 기행>(Italienische Reise)에서 나폴리에 펼쳐진 모든 것이 ‘낙원(paradise)‘이라며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고 표현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Everything here is natural and free. One feels as if humanity and nature become one.
- 괴테
괴테가 감탄한 아말피 해안(Amalfi Coast) 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지녔지만,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은 운전이 까다로운 데다가 주차도 어렵다. 아말피 해안의 시작점인 소렌토(Sorrento)에서 아말피 해안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향했다.
소렌토에서 SITA 버스를 타면 구불구불 SS163 도로(Amalfi Drive)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한쪽은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 다른 한쪽은 지중해인 에메랄드빛 티레니아 해(Tyrrhenian Sea)와 맞닿아 있다.
이 해안길을 따라 포지타노(Positano), 아말피(Amalfi), 공중 정원이라 불리는 고지대 라벨로(Ravello) 같은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세 마을을 잇는 구간이 가장 인기가 있어 인스타그램에도 가장 많이 등장한다. 단 돈 10유로의 버스요금으로 왕복 3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지중해와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쌓인 파스텔톤 건물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데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도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시작된 아말피 해안의 역사는 중세 시대에 아말피 공국(Duchy of Amalfi)이라는 강력한 해양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 되고, 이 해안길은 나폴리와 남부 이탈리아를 잇는 중요한 길로 수백 년간 사람들이 다니게 되었다.
포지타노에서 버스에서 내려 해안가와 레몬상점 등이 있는 골목구경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아말피까지 갔다. 아말피 해안의 레몬은 크고 향이 강해, 레몬 리큐어인 리몬첼로(Limoncello)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아말피 해안의 포지타노(Positano)는 ‘When I dream’이라는 OST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2003) 쵤영지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작가 프랜시스(다이앤 레인 역)는 친구의 권유로 이탈리아 토스카나(Tuscani)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아말피 해안에서 매력적인 이탈리아 남자 마르첼로(라울 보바 역)를 만나 설레는 사랑을 한다. 둘의 관계는 지속되지 않지만, 프랜시스는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족과 친구들 속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 아말피는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될 만큼 낭만이 가득한 곳이다.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한 아말피 해안은 특히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 마을 라벨로(Ravello)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머물렀다.
너무나 완벽한 풍경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a landscape so perfect that it feels almost detached from reality.
Henry James, <이탈리아의 시간>
이곳에서는 태양이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한다.
Here, the sun brings everything to life and makes it breathe.
- D.H. 로렌스
라벨로의 빌라 침브로네(Villa Cimbrone)는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 (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가 영감을 얻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로렌스는 이곳의 무한의 테라스(Terrazza dell’Infinito)에 1920년대 초반에 머물면서 소설 <아론의 지팡이》(Aaron’s Rod, 1922)을 집필했다. 주인공 아론(Aaron)이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찾는 이야기이다.
로렌스는 1920년대 후반에는 다시 포지타노에 머물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1928) 초고를 집필했다. 이탈리아 시골 생활과 유럽 귀족사회를 대비하며 귀족 여성인 채털리 부인과 노동자인 멜러스의 관계로 표현되었다.
신들의 길(The Path of the Gods, Sentiero degli Dei)은 아말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한 절벽을 걷는 하이킹 코스로, 이름 그대로 신들이 걸었을 것 같은 길이다. 입구에는 로렌스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신들의 길에서 시작하여, ‘세이렌(Sirens)의 마법 같은 만(灣)’ 위에 떠 있는 그 길은, 오늘날까지도 기억과 신화로 남아 있다.
- D.H. 로렌스
아말피 해안은 아름다운 노래로 항해자들을 유혹하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Sirens) 이 있던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로렌스는 신화에 더해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강조한다.
또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도 1880년 라벨로의 빌라 루폴로(Villa Rufolo)의 정원에서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 1882년 초연)> 2막에 등장하는 “클링소르의 마법 정원”에 대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현재 라벨로는 ‘바그너의 도시”로 불리며, 1953년부터 매년 바그너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클래식 음악 공연인 ‘라벨로 음악 축제(Ravello Festival)’가 열리고 있다. 빌라 루폴로에는 바그너 방문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해안길 친퀘테레는 로마와 피렌체를 여행한 후 향했다. 아말피해안은 자동차로 해안을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친퀘테레는 걸어서 해안을 줄길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음 글에서 이어 본다.
짧은 쇼츠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아말피 해안길을 신나게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