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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빌리티 Jan 06. 2024

쉽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아이

자폐라고 오해할 수 있는 말 느린 아이의 특징

말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을 잘 살펴보면 사실 ‘말'보다 ‘소통'이다.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않는 아이, 아는 단어는 꽤 많은데 소통이 잘 안 되는 아이, 수시로 빙글빙글 도는 아이, 갑자기 책상 밑으로 숨는 아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 등 이러한 행동을 보고 ‘혹시 우리 아이도 자폐일까?’라고 의심하게 된다. 


얼핏 보기엔 다 다른 고민처럼 보이지만 언어 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의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건 바로 ‘소통'이다. 


또래보다 의사 표현이 조금 서툴러서 그런지 가끔 보면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가정을 종종 만난다. 그때 하는 행동이나 활동이 무엇이든 어느 한 부분에 유난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한 가지 활동에서 그다음으로 전환할 때 매번 실랑이하게 되는 아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시간은 없는데 준비시키고 외출해야 할 때, 놀다가 저녁 먹어야 할 때, 티브이보다 샤워시켜야 할 때 등 하루에도 수백 번 아이가 생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름을 부르면 반응은 보이지만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부모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니 나이가 들수록 괜찮은 건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도대체 왜 그럴까? 아이의 이름을 몇 번 불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면 많은 부모는 바로 자폐증을 의심해 보곤 한다.


자신의 이름에 반응한다는 의미는 상대방이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하던 걸 멈추고 상대에게 집중하여, 나 또한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약한 호명 반응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초기 신호이기도 하지만 호명 반응이 떨어진다는 점 하나로 자폐라고 하기엔 어렵고 그 외의 전반적인 발달 영역을 고려해 봐야 한다. 약한 호명 반응 뒤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누군가 자신을 불렀을 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건 바로, 지금은 관심 없다는 말이다. 


영화를 한번 틀면 옆에서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해도 꿈쩍하지 않고 영화에만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왜 그럴까? 그 사람은 분명 지금 그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부르는지도 모를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쉽게 빠지는 성향의 아이라면 이름을 불러도 잘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 각성 조절 어려움이 있는 아이, 정서가 불안한 아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


먼저 각성 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을 살펴보자. 이 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크게 관심 없는 모습을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 가질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야 주변을 돌아보고, 흥미롭다고 느끼는 활동에 참여하고, 상호작용의 즐거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 자극에 노출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배움이 확장되면서 학습의 즐거움을 느낄 때 내적동기가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각성 조절이 어려운 아이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경험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각성이란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반응이 깨어있는 정도를 말하는데, 하루 동안 각성은 주기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각성 기복은 신체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때 조절되고, 각성 조절이 될 때 우린 일상생활에 큰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설명했던 유난히 먼 산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거나,  이름을 불러도 별 반응이 없거나 반응 속도가 느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아이는 낮은 각성에 갇혀 스스로 깨고 올라올 힘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장난감 하나만 손에 쥐어줘도 혼자서 긴 시간도 혼자서 놀고, 손이 많이 안 가는 순한 아이였을 확률이 높다. 


낮은 각성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들은 마치 며칠 밤을 새운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촉각, 시각, 청각 자극에 느린 반응을 보이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물체에 쉽게 부딪히고,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얼굴이나 손에 이물질이 묻어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활동 전환을 유독 어려워한다. 또한, 한 가지 놀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한 가지 활동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억지로든 필요에 의해서든 아이의 주의를 전환시키려고 할 때 격한 행동을 보이거나 생떼를 부리게 된다. 각성 조절 어려움으로 인해 이렇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생활이 지속될 때, 전반적인 아이의 발달이 더디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우에는 주의력 결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이런 아이들은, 각성 레벨을 좀 더 끌어올려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일상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각성 수준에 대해서는 뒤에 나올 7장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으로 정서가 불안한 경우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보자.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유난히 주의 전환이 어려운 아이들이다. 전환이 힘든 아이의 기준에선 모든 활동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말 좋아하는 것과 정말 싫어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땐 자기만의 세계에 쉽게 몰입되지만, 다른 모든 활동은 싫기 때문에 심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티브이를 보다 밖에 나갈 준비 해야 할 때,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야 할 때 등 활동 전환은 일반적으로 아이가 선호하는 일(좋아하는 활동)에서 해야만 하는 일(일상생활 활동)로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어려워하고 싫어할 수밖에 없다. 사소한 일상의 흐름이 전부 변화로 느껴지는 이런 성향의 아이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무반응으로 일관하기도 하고, 옷장에 숨거나, 심하게 저항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피 행동을 보이며 자기 방어를 시작한다. 심지어는 좋아하는 활동을  빨리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그 활동 외에는 모두 방해로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이때 아이는, 이미 내 영역을 부모로부터 침범당했다고 느껴 마음이 불편한데, 부모의 재촉하는 모습에 불안감마저 느끼게 되니 아이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영역이 매우 중요한 방어 기제가 높은 아이는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매번 전환 상황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그런 모습을 본 부모는 화를 내거나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반대로 아이는 지적당할까 봐 더 회피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부모가 상황을 억지로 통제하며 끝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하루에 예측되지 않은 계획이 많을수록 전환을 힘들어하니, 일관성 있게 하루를 계획하면 아이들의 활동 전환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다음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의심해 봐야 하는 케이스다. 아이를 불렀을 때 간혹 돌아볼 때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땐 집중하느라 약한 호명 반응을 보이는 경우, 아이의 나이와 그에 맞는 사회적 기술도 함께 고려해 보아야 한다. 발달 속도는 아이마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후 6개월부터 호명 반응이 가능하고 6~9개월 사이에 일관성 있게 자신의 이름에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생후 18개월이 지나도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이름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사회성' 하면 사람을 좋아하고, 낯을 가리지 않아 누구한테도 잘 가는 아이를 떠올리지만, 사실 영유아 시기의 사회적 기술은 그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한다.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낯가림이 나타나야 하는 시기에 낯을 가리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거나, 생후 9개월 무렵부터 분리불안이 나타나야 하는 시기에 부모와 쉽게 분리되고 다시 만나도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향후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주 양육자 외 낯선 사람을 만나면 엄마를 가장 먼저 찾고 엄마에게 매달려 낯선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며 경계하는지, 엄마가 잠시 외출하려 해도 불안해하며 울며 따라가려 하는지, 껌딱지처럼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 칭얼거리며 쫓아오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이는지를 관찰해 보자. 이는 정상 발달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기초 단계다. 


만약 만 3세가 지났고, 위에 서술되어 있는 모습을 간혹 보여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다음의 예를 보며 아이의 나이에 맞는 사회적 기술을 습득했는지 살펴보자. 예를 들어 인형을 가지고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지, 좀 전까지 재미있게 놀던 장난감을 들고 와서 보여주며 엄마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하는지 등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쉽게 빠지는 아이의 행동 뒤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주의 전환이 어려운 아이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반응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조금 더 필요하다는 신호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부모를 지치게, 또는 화나게 하기도 하지만 매번 화를 내며 끝나는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아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노크하며 조금만 더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가장 힘든 건 부모가 아닌 아이일 수도 있다. 부모에겐 문제로 보이는 행동이, 아이 입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리고 아이를 돕기 위해선, 나의 화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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