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도소의 겨울 목욕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방 마다 온수 샤워가 나오는지. 우리나라가 아무리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교도소 수감 동에 온수 샤워기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 경험으로 서울구치소는 방 안에 찬물이기 하지만 수도꼭지가 있었고 대구교도소는 없었다. 그래서 대구교도소는 식사 후 방 마다 들통에 물을 받아 사용하였는데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서울구치소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수도가 아닌 청계산 지하수를 연결해서 상수도를 만들었고 그 지하수 물맛이 좋아 교도관들을 약수물처럼 물을 받아 가지고 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일주일에 한번 온수 목욕을 한다. 목욕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꼭지 아래서 물을 맞고 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목욕시간이 되면 미리 방 안에서 옷을 벗고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까지 뛰어간다. 뛰어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 1초라도 더운물을 더 받기 위해서다. 어떤 이는 방 안에서 머리에 샴푸를 붓고 가는 이도 있었다.
시간은 5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샤워기 아래 각 방의 범털이나 최고수가 있으면 그 샤워꼭지를 다른 이는 못 쓴다. 샤워꼭지가 10개이면 10명안 보내는 것이 아니라 20명 정도는 보내니 쟁탈정이 치열 할 수밖에. 나처럼 힘없는 사람은 물도 재대로 맞아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리고 아무리 남자들만 사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방 안에서부터 옷을 벗고 치부를 덜렁거리며 우르르 뛰어가서 샤워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러 온수 목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정은 각기 다 있었다. 성기에 이상한 짓을 해서 남에게 보이기 싫은 사람. 또는 문신이 많은 사람 등 등.
나도 함께하는 온수 샤워를 거부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가장 먼저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샤워꼭지 하나에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물줄기를 두고 싸움을 하면서까지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며 그곳에서까지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대접을 받으면 누군가가 불편한 샤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한두 번 온수 목욕 시간에 빠졌더니 담당 교도관이 물었다 왜 온수 목욕을 하지 않느냐고. 당시 내 담당 교도관은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키가 크고 마른 송 부장이었다. 그는 사람 좋기로 사동에서 이름이 나 있었고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거나 재소자들과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저런 적당한 이유를 대고 얼버무리고 넘어 갔는데 그 다음 날 내 목욕물로 온수가 지급 되는 것이 아닌가. 내 목욕물은 목욕물이 아니라 식수로 나오는 온수를 목욕물로 주는 것이었다. 하루 세 번 식사 시간 전에 식수가 배달되는데 식수는 지하수를 받아 끓인 뜨거운 물이었다. 이 물이 있어야 컵라면도 먹을 수 있고 닭고기 훈제도 먹을 수가 있었다.
아무리 친절한 교도관이라지만 재소자를 위해 식수를 목욕물로 주는 경우는 교도소 생기고는 처음이라며 방 사람들이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송 부장의 배려로 방 안에서 일주일에 두 번 온수 목욕을 할 수 있었고 더러는 방의 다른 사람을 위해 목욕을 양보하기도 했다. 식수를 목욕물로 준 이유는 아직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단체 온수 목욕이 싫은 사람은 방 안에서 찬 물로 목욕을 했는데 지하수 물이라 생각보다는 차갑지 않았고 팔굽혀펴기나 다른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하면 견딜 만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