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결정하는 시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법

by 김삼월

스마트폰을 켠다. 유튜브 앱을 실행하자마자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된 영상들이 나를 반긴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이라며 들이미는 섬네일들은 섬뜩할 정도로 내 취향을 관통한다. SNS 피드 사이사이에 끼어든 광고는 또 어떠한가? 마치 내가 무엇에 결핍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를 유혹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은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클릭 몇 번이면 순식간에 결제가 이루어지고, 빠르면 바로 다음 날 현관 앞까지 ‘욕망’이 배송되는 세상.


“우리는 정말 우리의 취향대로 살고 있을까?”


잠시 멈춰 질문을 던져본다. 이 모든 욕망은 정말 나의 것이 맞나?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데이터가 주입한 욕망은 아니었나?



내 욕망은 내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다소 난해하게 들리는 이 말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아주 명쾌하게 증명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사실 우리는 그 물건 자체의 효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물건을 소유한 타인이 누리는 지위, 그가 발산하는 이미지,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욕망하는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든 가방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가방의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그 가방을 멘 인플루언서의 삶이 화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끊임없이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을 욕망하지 않는 나를 뒤처진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뒤쳐지기 싫으면 소비를 멈추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내 머리를 관통한다. 그리고 또 이런 메시지가 스친다. ‘그것을 취향이라고 말하세요.’ 나의 취향이라 믿었던 것들은 사실은 학습된 데이터의 가스라이팅이었다? 꽤나 서늘한 공포이다.



만년필을 사다



최근 나는 만년필 한 자루를 샀다. '파이롯트 프레라'라는 모델이다. 잉크와 펜을 합쳐 5만 8천 원.


‘누가 펜 한 자루에 5만 8천 원을 태워?‘

’저요.‘


누군가에게는 펜 하나에 쓰기엔 과한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년필 세계에서는 그래도 ‘가성비’ 제품이다.


사실 글씨를 쓰는 기능만 놓고 본다면 1,000원짜리 볼펜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관리의 편의성까지 따지면 1,000원짜리 볼펜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내가 만년필을 산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펜을 산 것이 아니라 '사각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그 '이미지'를 산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우리가 물건의 '사용 가치'가 아닌 '기호 가치'를 소비한다고 했다. 내가 만년필을 쥔 순간, 나는 단순히 필기구를 쥔 사람이 아니라 '일상을 사유하고 기록하는 지적인 사람'이라는 기호를 입게 된다. 프라이탁 가방을 메는 것이 '친환경적인 힙함'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건을 ‘반려’하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진짜 내 취향'을 지킬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답을 다시 만년필에서 찾는다.


나는 물건을 살 때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려 노력한다. 한 번 들이면 웬만하면 평생 함께 가겠다는 마음. 단순히 유행이라서, 남들이 다 사니까 사는 물건은 금방 질린다. 하지만 내 삶의 맥락 안에서 필요를 느끼고, 고심 끝에 들인 물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5만 8천 원짜리 만년필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다.”


앞으로 매일 나의 일기장 위를 달리며 내 생각의 궤적을 함께할 친구다. 물건을 소비하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나와 함께 늙어가는 '반려 사물'로 대할 때, 비로소 타인의 욕망은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평생 책임질 수 있는 것. 유행하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 줄 도구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가장 윤리적인 취향의 시작이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오직 나와 만년필만이 존재하는 그 사각거리는 시간 속에 비로소 '나의 욕망'이 있었다.

월, 목 연재
이전 02화02. ‘좋아요’의 범람 속 윤리적 취향인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