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Are you hang?(아 유 행?)

당신은 무엇을 견디고 있나요?(유행을 좇는 피로감)

by 김삼월

도파민(dopamine)이 지배하는 시대다. 어제 큰맘 먹고 산 옷은 택을 떼기도 전에 철 지난 스타일이 되고, 지난주 단톡방을 달궜던 밈(Meme)은 이번 주엔 눈치 없이 꺼내면 안 되는 '한물간' 농담이 되어버린다. 세상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우리는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 끝에서 매일같이 새롭고 강렬한 자극을 수혈받는다.


이 숨 가쁜 질주의 배후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우리가 머무는 시선과 클릭을 기민하게 읽어낸 화면은 끊임없이 "지금 이걸 사지 않으면, 이 트렌드를 모르면 당신만 뒤처지는 거야"라고 은밀하게 속삭인다. 끝없이 쏟아지는 숏폼 영상과 매끈하게 편집된 타인의 피드 속에서, 새로운 소비와 취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강요처럼 다가온다. '최신 유행', '한정판', '품절 대란'이라는 수식어들은 우리의 조바심을 쉼 없이 자극한다.


문제는 그 속도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다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늘어나는 카드 값이나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주는 압박감 때문만은 아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지금 가장 '힙'하다고 하니까 허겁지겁 내 삶에 주워 담는 사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버린 탓이다. '나는 정말 이것을 좋아하는가?'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고 무비판적으로 트렌드를 좇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나'라는 고유한 사람은 점점 옅어지고 흐릿해진다. 풍요로운 취향의 전시장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철저히 빈곤해지고 있다.


수많은 유행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서늘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취향이 아닌 나의 취향으로 단단하게 서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취향을 쥐고 잘 버티고(hang) 있는가. 아니면 그저 유행(행)에 휩쓸려가고 있는가?



피로감



유행을 좇는 행위의 기저에는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즉 유행을 좇는 것은 무리에 안전하게 섞이고 싶고, 시대의 흐름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은 본능적인 마음이다. 일찍이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은 유행의 본질을 가리켜 '모방'과 '차별화'라는 두 가지 모순된 욕구의 결합이라고 통찰한 바 있다. 우리는 남들과 같아짐으로써 안도감(모방)을 얻는 동시에, 그 유행을 모르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차별화)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묘한 심리 게임의 끝은 역설적이다. 나만의 세련된 차별화를 위해 선택한 트렌드가 대중 전체에게 완전히 퍼져나가는 순간, 그 유행은 본래의 빛을 잃고 파괴된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유행을 맹렬히 좇을 때, 우리는 가장 개성 없는 '무채색'의 군중으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심한 권태를 느낀다. 거리로 나서면 모두가 비슷한 실루엣의 옷을 걸치고, 핫플레이스에서는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으며, SNS에서는 붕어빵처럼 찍어낸 듯 비슷한 말투가 넘쳐난다. 개성이 넘친다고 착각하는 이 획일화된 풍경은 어딘가 기이하기까지 하다. 나만의 고유한 안목 없이, 누군가 정답이라고 정해준 타인의 취향을 맹목적으로 복제하는 것. 아무리 최신 유행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한들, 그보다 더 빈약하고 '촌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유행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는 일은 생각의 에너지를 아껴주기에 당장엔 편안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파도에 휩쓸려 가는 동안, 우리는 결국 내 삶의 방향을 놓친 채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길을 잃어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는 이 짙은 피로감은 단순히 쏟아지는 정보의 과잉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욕망을 좇느라 정작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자문자답을 유예해 버린 뼈아픈 대가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닻을 내리다



유행의 가파른 속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멀미가 날 때쯤, 나는 오히려 시선을 거두고 시간이 흐를수록 고유의 멋이 짙어지는 것들을 향해 눈을 돌린다. 변덕스러운 트렌드에 타협하지 않고 수십 년간 묵묵히 자신만의 헤리티지(Heritage)를 지켜온 브랜드나, 버려진 낡은 트럭 방수천을 잘라내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을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행보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남들이 앞다투어 올라타는 유행의 궤도에 편승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만의 단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나는 사물과 세상을 대하는 이 우직한 태도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취향의 윤리'와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매년 세상이 정해주는 트렌드 컬러를 기계적으로 옷장에 욱여넣는 대신, 내 삶의 궤적과 분위기에 가장 깊이 호응하는 나만의 '컬러 포인트'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남들이 다 입는 무난하고 안전한 무채색의 실루엣 뒤로 나를 숨기는 대신, 때로는 조금 튀고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색과 형태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기.


결국 그것만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아야만 안도하게 만드는 이 도파민 시대의 짙은 피로감을 씻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센 파도 위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는 대신, '나'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묵직한 닻을 내리는 일. 그것이 진짜 취향을 가진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나의 고유함을 견디는 힘



결국 범람하는 유행을 대하는 가장 우아한 태도는 다름 아닌 '멈춤'과 '응시'다. 세상의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갈 때 덩달아 발을 구르며 뛰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깊은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걸쳤을 때 가장 나다운 편안함을 느끼는가?"

"어떤 향기가 내 공간을 채울 때 비로소 온전한 휴식이 되는가?"

"나는 어떤 물건의 손때를 묻혀가며 함께 늙어가고 싶은가?"


이 고요한 질문들에 온전히 내 언어로 답할 수 있다면, 밖에서 밀려오는 유행은 더 이상 쫓아가야 할 버거운 '숙제'가 아니라 가볍게 즐기고 넘길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옅어진다. 남들이 뭐라 평가하든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단단한 '뻔뻔함', 그리고 내 안목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이것이 바로 도파민과 유행의 거센 홍수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굳건히 지켜내는 닻이다.


나는 유행에 뒤처지거나 유행을 모르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행 자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트렌드가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촌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덧입혀질수록 고유의 색이 더욱 선명해지는 사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기꺼이 나의 고유함을 쥐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것(hang),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이자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멋'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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