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기록하는 인간의 안목: 호모 스크립투

7년의 일기장이 말해주는 내 취향의 역사

by 김삼월

7년. 무언가 하나의 습관이 단발성 다짐에 그치지 않고, 삶의 단단한 지층으로 굳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책장 한편, 연도별로 빼곡하게 꽂힌 일기장 일곱 권의 낡은 등허리를 가만히 쓸어본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빛바랜 표지 속에는 켜켜이 쌓인 나의 어제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흔히 기록이란 그날의 날씨를 남기거나 스쳐 지나간 얄팍한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는 소극적인 행위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무언가를 적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치열한 과정이다.


그것은 하루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내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 수많은 선택지 중 유독 어떤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었으며,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고자 했는지 선명하게 새겨 넣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남몰래 밑줄을 그었던 문장, 유난히 오래 머물렀던 공간의 온도, 입 안을 맴돌던 단어들은 모두 빈 노트 위로 옮겨져 나의 고유한 윤곽을 그려낸다.


결국 취향이란 화려한 진열장 속에서 단숨에 골라낼 수 있는 기성품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아 기록하며 세심하게 선별해 낸 결과물이다.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쥐고 어제를 복기할 때, 나는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나만의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세워가고 있었다. '기록하는 인간', 즉 호모 스크립투(Homo Scriptus)가 남긴 그 성실한 궤적 안에서, 나는 비로소 단단하게 뿌리내린 내 취향의 역사를 마주한다.



오답노트가 만들어낸 뾰족한 취향



일기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사각거리는 종이 마찰음과 함께 과거의 내가 열광했던 것들과 스스럼없이 마주치게 된다. 페이지마다 묻어난 취향의 파편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해에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특정 작가의 건조한 문체에 깊이 빠져 매일 밤 그 문장들을 탐독했고, 어떤 해에는 입안을 찌르는 듯한 쌉싸름한 산미가 도는 커피 원두에 집착해 낯선 카페들을 기웃거렸다. 또 어느 시기에는 대중의 관심 밖인 이름 모를 인디 밴드의 음악만을 이어폰 너머로 닳도록 들으며 스스로 특별해졌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 모든 기록이 우아하고 세련된 발자취만은 아니다. 때로는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그 시절의 얕은 유행에 휩쓸려 무비판적인 찬양을 늘어놓은 부끄러운 문장들도 불쑥 튀어나온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 덩달아 좋아 보였던 물건들, 나의 진짜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 타인에게 전시하기 위해 급조했던 알량한 감상들. 당장이라도 페이지를 삭제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그 치기 어린 문장들 역시 내 일기장의 어엿한 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흑역사 같은 기록조차 내게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실패한 소비, 냄비처럼 금세 끓어올랐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벼운 열정,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내 것인 양 몸에 맞추려 했던 불편한 취향들. 내 삶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그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적혀 있는 이 꼼꼼한 '오답 노트'가 있었기에, 나는 비로소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을 삶에서 하나둘 미련 없이 소거해 나갈 수 있었다.


취향의 뼈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어떤 것에 금방 흥미를 잃는지 명확히 인지할 때 비로소 견고해진다. 지난 7년의 기록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축적하여, 불순물을 걸러내고 '진짜 내가 사랑하는 것'의 정수만을 남기는 훌륭하고도 냉혹한 여과기였다. 무수한 오답을 적어 내려간 그 성실한 시간들이, 결국 나만의 뾰족하고도 선명한 취향의 각도를 벼려낸 셈이다.



휘발되는 감각을 붙잡아 안목으로 벼려내다



기록은 일상 속에서 속절없이 휘발될 뻔한 찰나의 감각을 단단하게 붙잡아, 나만의 고유한 '안목'으로 벼려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 속을 부유하며 살아간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저 "좋다", "멋지다"라는 뭉뚱그린 감탄사 하나를 가볍게 내뱉고 멈추는 것과, 그것이 '구체적으로 왜 좋은지', '그 대상의 어떤 미세한 디테일이 내 마음의 현을 울렸는지'를 고민하며 펜을 꾹꾹 눌러 문장으로 지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전자가 감정을 바람에 그저 흘려보내는 일이라면, 후자는 감정의 흩어지는 윤곽을 조심스레 매만져 온전한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나만의 언어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대상을 한 번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물의 표면을 넘어 이면으로 향하고, 내면의 감각을 뾰족하게 파고드는 깊은 사유가 시작된다. 그저 스쳐 지나갈 뻔했던 영화 속 한 장면의 서늘한 미장센, 우연히 들어간 길모퉁이 작은 숍에서 손끝에 닿았던 거친 패브릭의 촉감, 혹은 누군가와 무심코 나눈 대화 속에서 유난히 반짝이며 내면에 공명하던 단어들. 이 작고 파편화된 일상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일기장'이라는 고요한 활주로 위에 무사히 내려앉을 때, 그것들은 더 이상 일회성 감상이나 정보의 파편에 머물지 않는다.


그 순간, 흩어져 있던 감각들은 비로소 질서를 부여받고 나만의 견고한 취향으로 정립된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것을 내면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그 기꺼운 수고로움. 그 치열한 통역의 시간을 거쳐 활자로 또렷하게 적어 내려간 취향의 기록들은, 이후 어떤 거센 유행의 바람이 불어와도 쉽게 흔들리거나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리지 않는다. 기록이라는 행위는 그렇게 아주 미세한 감각의 입자들을 모아, 타협할 수 없는 단단하고도 고유한 안목의 세계를 조금씩 축조해 나간다.



기록이 쌓여 내가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내 7년 치의 일기장은, 단순히 과거의 나를 박제해 둔 낡고 고루한 박물관이 아니다. 세상이 쉴 새 없이 새로운 유행을 쏟아내고, 타인의 화려한 취향이 내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음들 속에서, 그것은 나를 원래의 자리로 거뜬히 다잡아주는 가장 정확하고 예리한 '나침반'이다. 길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펼쳐보는 이 내밀한 기록들은, 내가 진정으로 무엇에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며 반대로 어떤 것을 곁에 두기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지 너무도 선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탁월한 안목과 깊이 있는 취향을 타고난 감각이거나 어느 날 우연히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영감쯤으로 여긴다. 혹은 값비싼 재화를 지불하면 단숨에 손에 쥘 수 있는 쇼윈도 너머의 기성품이라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결을 결정짓는 진짜 취향은 결코 자본이나 얄팍한 요령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새벽 무거운 눈꺼풀과 밀려오는 졸음을 기어이 참아가며, 하루치 삶에서 건져 올린 나의 뾰족한 호오(好惡)를, 그 미세하고도 솔직한 마음의 떨림을 백지 위에 성실하게 새겨온 자만의 특권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호모 스크립투(Homo Scriptus)'. 흔들리지 않는 안목이란 결국, 이 고단하고도 기꺼운 의식을 매일 매일 묵묵히 치러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조용하지만 그 무엇보다 눈부신 삶의 훈장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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