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 – 자유 여행과 내일의 약속

by 윤기환

주차 딱지


새벽 6시도 되기 전, 눈이 떠졌다. 머리는 무겁고 몸은 덜 깨어 있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곤히 자고 있는 가족을 두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전날 밤 새워 둔 차를 확인하고,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 유리창에 낯선 붉은 종이 한 장이 꽂혀 있다. 다가가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주차위반 딱지다. 전날 저녁 7시 30분에 발급된 티켓, 벌금은 115달러. 이유는 소방시설 인근 주차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에 붉은 소화전이 서 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호텔 요금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침부터 속이 더 쓰리다. 인근 24시간 주차장을 찾았다. 하루 20달러. 20달러를 아끼려다 115달러를 잃었다는 생각에 속이 끓었지만, 그 감정을 혼자 삼켜야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으로 돌아가 가족을 깨웠다. 딱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뉴욕의 지하철


오늘의 투어를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어제의 경험 덕분인지, 아들은 제법 능숙하게 우리를 이끈다. 뉴욕의 지하철은 낡고 거칠었다. 벽면의 페인트는 벗겨져 있고, 낙서와 냄새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오래된 도시만이 가진 질서가 있었다. 24시간 쉬지 않는 운행, 촘촘한 노선 연결, 단순한 요금 체계. 겉모습은 거칠어도 도시의 혈관처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유 여신상(Statue of Liberty)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상징 ‘자유 여신상’을 먼저 보기 위해 Red Line을 타고 South Ferry역으로 갔다. 부둣가에 있는 배터리 파크에서 Liberty Island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아쉬운 점은 자유 여신상 내부를 구경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1일 관람 인원에 제한이 있는데, 이미 내부 구경을 할 수 있는 표가 다 팔렸다 한다.


배가 항구를 떠나자,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형상이 시야를 채운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이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염원이 응고된 상징처럼 보인다. 조각가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가 어머니의 얼굴을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그 거대한 동상에 묘한 온기를 더해준다. 높이 92미터의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얼굴은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자애롭다. 자유란 결국, 인간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섬에 내려 사진을 찍었지만, 동상이 너무 커 화면에 다 담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유 여신상이 섬 위에 있는 줄 몰랐다”며 신기해한다. 나 역시 여기 올 때까지는 몰랐던 사실이다.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우리는 자유 여신상 마그네틱 하나를 골랐다. 손바닥만 한 물건이었지만, 오늘의 기억을 붙잡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돌아오는 배를 탔다. 배 위를 나르는 갈매기가 한가롭다. 관광객들이 주는 과자를 날쌔게 낚아채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갑판에 앉아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배는 Ellis Island을 경유한다. 한때 수많은 이민자들이 이 섬을 통해 미국 땅을 밟았다.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들.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갑판 위에서 섬을 바라보며,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상상해 본다. 그들의 떨림과 기대가,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을 것이다.


911 테러의 현장 – Ground Zero

다시 지하철을 타고 World Trade Center site로 향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현장. 당시 110층, 442미터에 달하던 쌍둥이 빌딩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4년이 지난 그곳에는 거대한 공백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세우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 빈 공간은 쉽게 채워질 수 없는 기억처럼 보인다. 이념과 증오가 만들어낸 상처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나는 잠시 말을 잃고 텅 빈 웅덩이, Ground Zero를 바라본다. 아무런 죄 없이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넋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자연사 박물관

북쪽으로 올라가 Central Park에 도착했다. 어제 차로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인근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으로 갔다. 3,500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전시. 동물, 화석, 인류의 흔적들이 시간의 층위를 이루고 있다. 딸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동물들을 하나하나 찍는다. 그 작은 눈 속에서 세상은 얼마나 크게 확장되고 있을까. 그 나이 정도면 가장 호기심이 많을 나이이기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풀어 주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얼마를 돌아다녔을까. 전시장이 워낙 큰 규모라서, 전시를 다 보았는지도 모른 채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다. 그냥 비를 맞으며 걷는데,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멎는다.


연극과 뮤지컬의 전당 – Broadway

브로드웨이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Times Square 중심에 있는 Broadway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 온 김에 온 가족이 공연 한 편을 본다면 평생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수많은 공연 포스터 속에서 한국의 ‘난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Cooking'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고 있다. 나는 미국에 오기 전에 난타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언어 없이도 세계와 통하는 리듬.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만난 익숙한 이름은 묘한 자부심을 안겨준다.


우리는 고전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그러나 매표소 앞에서 뜻밖의 장벽을 만났다. 카드는 안되고, 현금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돈, 준비 부족으로 공연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내는 돈을 아꼈으니 오히려 잘 됐다며 웃는다.그 웃음을 씁쓸한 위로로 삼는다.


내일의 약속, 아쉬운 발길

밤이 내려앉은 Times Square는 오히려 더 밝아졌다. 뉴욕에는 밤이 없다. 아니, 밤이 더 살아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아들은 더 걷고 싶다고 하고, 딸은 지쳤다며 발걸음을 늦춘다. 딸아이를 달래 가며 천천히 도시를 걷다가, 밤 9시가 넘어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쯤에서 뉴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앞으로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다. 오늘을 잘 기억해 두어라.”

언젠가 아이들이 다시 이 도시를 찾을 때, 오늘의 기억은 조용히 되살아날 것이다. 특히 아들은, 이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 가족을 이끌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 작은 경험이 아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언젠가 삶을 건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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