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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Apr 03. 2024

놓고 가서 미안하다는 선배에게

존경하는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 박아.


끝음을 약간 내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나는 저 소리가 나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네에-.'라 대답하며 도도도 달려갔다.


    이름선배를 만난 건 5년 전,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밖은 아주 컴컴하고, 찬 공기가 문틈 사이로 스미는 시간이었다. 어두운 색 원피스를 입은 이름선배는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며 '어? 직원 분들이 아직 계시네요.'라고 했다. 찬바람에 몸이 꽁꽁 언 이름선배는 뜨끈한 보일러 바닥에 앉아 몸을 녹였다. 컵을 데워 따뜻한 물 한잔을 드리니 고맙다 웃어 보였다.


미팅 온 이름 선배와 사무실에 있던 N선배는 서로 말을 편히 주고받았다. 내게 N선배는 딱딱하고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이름아, 이름아.’하고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야속한 마음이 들어 몰래 입을 삐죽거렸다. 미팅이 끝난 후 N선배에게 ‘방금 왔다 간 분은 누구시냐.’ 물었더니 프리랜서이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했다. 그러고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이름선배는 몇 달 뒤 우리 회사 직원이 되어 돌아왔다.


   이름선배는 처음에 나를 ‘박이 씨’라 불렀다. 이름선배는 회사에서 겉돌던 내게 따뜻한 곁을 내어준 사람이었다. 소개팅 나온 사람 마냥 “박이 씨는 뭘 좋아해요? “, ”이건 어때요? “라며 한마디라도 더 얹어주려 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다. 밥을 먹으러 갈 때 선배들 뒤꽁무니만 쫓아가던 내게 “그림자처럼 걸어온다. “며 나를 쿡쿡 찔러 앞세워주고, 강렬한 첫회사의 기억으로 과도하게 노예처럼 굴던 내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라며 일을 가벼이 넘겨주던 사람이었다. 물론 선후임 관계인지라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나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커피 한잔에 다정한 말 한마디를 얹어주면서 서운한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배였던 내 역할은 약소하지 그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선배는 항상 사람들 앞세워 칭찬해 주고, 흔들릴 때 뒤에서 다잡아 주는 좋은 상사이자 선배였다. 나는 그런 이름선배를 참 좋아했다.


   - 박아, 나 늦가을쯤 회사 그만두려고.


   그런 이름 선배는 분명한 목표와 다짐이 있던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거라던 이름 선배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낮고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눈빛을 반짝였다. "이제는 그 시기가 온 것 같다."는 말에 "꿈을 이루셨네요. 부러워요."라며 웃어 보였다.


몇 달 뒤 이름 선배는 독립할 것임을 경영진에게 공표하였고, 얼마 안 가 이름 선배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름선배는 퇴사 날 내게 손편지와 선물을 주었다. 편지에는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는 문장과 ‘놓고 가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때는 놓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추억을 되새기는 말이 좋아서 그 말을 가벼이 넘겼다.

그러고 나도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아끼던 후배에게 쓴 편지에 이 말을 적었다. ‘놓고 가서 미안하다.’라고.


   이름선배. 저 이제는 그 말 뜻을 알 것 같아요. 아마도 선배 눈에는 보였겠죠. 제가 좋은 일이라며 축하한다 말하면서도, 얼굴에 선배 없는 회사 생활의 막막함이 가득했다는 것을. 선배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상황들을 전부 해결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알아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길이 있기에 ‘놓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고, 제 안녕을 바라주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역시 역지사지의 마음이 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것 같아요. 부디 놓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것도 잊을 만큼 행복하기를. 마음 깊이 바래요. 이름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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