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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미 Jun 08. 2024

발리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까?

DAY1. 발리에 도착하다

 2023년 1월, 발리에 출장을 갔었다. 약 2주간의 여정이었는데, 우붓 외곽의 한 구석에 박혀 일만 하느라 제대로 된 바다 한 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도보 10분 남짓의 출퇴근 시간에 마주친 골목길, 툰 언어를 대신하던 구멍가게 사장님의 손짓, 떠나던 날 양팔을 뻗어 배웅해 주던 숙소 앞 카페 직원들...  소소한 순간들이 발리 여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후로 1년 뒤 2024년 2월 14일, 10kg의 여행짐을 짊어지고 발리에 도착했다. 이 글은 24일 동안 발리에서 생긴 일에 대한 기록이다. 누군가에는 정보를, 누군가에게는 추억 타임머신을, 누군가에게는 랜선 여행 만족감을,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는 삶을 지탱할 힘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발리 응우라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을 감싸는 눅진한 습기가 발리에 왔음을 실감 나게 했다. 사실 공항에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기까지는 비행기 딜레이 때문에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무사히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열심히 검색창을 두드려 보았지만 마땅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남겨두는 <SCOOT> 항공기 딜레이 썰.

대한항공 직항은 90-100만 원, 외항기 저가항공으로 경유하면 46만 원. 50만 원 아껴서 숙소와 음식에 더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스쿠트항공 티켓을 끊었다. 싱가포르에서 3시간 안에 경유하면 되는 항공권이었다.


'3시간이면 공항 좀 둘러보다가 넉넉하게 경유하면 되겠지, 그 사이 여행 계획도 짜고...'


나의 안일한 생각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안내문을 보고 단숨에 부숴져 버렸다. 3시간 지연이라고요? 카운터로 급히 달려가 물었다.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죠?"

"싱가포르 공항 쪽에서 이륙 시간을 늦추더라도 태워 가겠대요. 굳이 티켓 안 바꾸셔도 될 것 같아요."

"환승 구간은 짧나요?"

"그다지 길지 않아서 충분할 거예요. 만약 길을 못 찾겠다면 항공사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그래, 뭐 될 대로 되겠지. 직원의 단호한 말투에 마음이 놓였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출발 시간이 늦어지자 초조해졌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나 싶었다. 그렇게 약 6시간을 날아 도착한 싱가포르. 비행기에서 급히 내려 통로를 빠져나오니 스쿠트 항공 직원이 팻말을 들고 서 있다. 급한 마음에 목적지부터 외쳤다.


"...발리!"

"Over there!"


직원이 가리키는 손가락 시선을 따라가니 바로 눈앞에 게이트가 보였다. 게다가 예상 시간보다 빨리 도착! 결국 비행기 출발 시간 30분 전에 탑승을 완료했다는 결말. 역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하등 쓸모없는 짓이다.

지붕이 뚫려 있는 입국장이 인상 깊은 응우라이 국제공항. 작년에 왔을 때 몇 이고 왔다 갔다 했던 곳이라 풍경이 익숙했다. 발리 첫 목적지는 우붓으로 정했다. 공항에서 고젝이나 그랩을 잡는 것보다 미리 기사와 연락해 택시 예약을 잡는 게 더 저렴하다고 해서 약속을 잡아놨다.


금액은 300K루피아(한국돈 약 25,000원)


한참 두리번거리다 보니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헬로우! 반갑게 맞아주는 택시 기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우붓으로 향했다.


"내 택시는 어떻게 알고 예약했어?"

"한국의 인도네시아 여행 카페에서 추천글을 봤어."

"그 덕분인지 요새 한국인 손님이 많아서 바빠. 사실 오늘도 원래 다른 예약이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취소됐어. 그 사이 네가 예약을 한 거야."

"굳 타이밍!"

1시간 정도 달리니 갖가지 상점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운 골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붓의 초입에 도착한 것이다. 느리게 생활하며 오래 지내기에 마땅한 동네, 그것이 우붓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나의 첫 숙소였던 우붓 <RANGGEN GUEST HOUSE>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약간 당황했다. 입구를 넘자 발리의 가정집 그 자체 같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만 봤을 땐 좋아 보였는데, 속았나?


'그래, 발리 민박 같은 데서 자보는 것도 경험이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상냥한 주인이 마중을 나왔고, 그 주인을 따라갔다. 그러자 새로운 대문이 나타났다.

대문을 넘자 사진 속에서 봤던 그 장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방은 1층.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수영장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우기의 발리는 매우 더웠기 때문에, 하루를 마치고 수영장에 뛰어든다면 환상적인 루틴일 거였다. 룸 컨디션도 만족스러웠기에, 2박을 연장해 이곳에서 총 6박을 지냈다.

일주일 사이 정이 들어버린 방.

체크인을 한 이후에는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붓은 그동안 가봤던 동남아 여행지와는 색다르게 매력적이었다. 글 속에 파묻힌 신들의 동네 같은 느낌이랄까.


'신들의 섬'이라는 발리의 수식어가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나가는 집집마다 사원이 차려져 있어 경건함이 느껴졌다. 사원이 클수록 부유한 집이라고 하던데, 그 기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대문 앞마다, 식당의 테라스 자리마다 놓여있는 이 작은 공양인상적이다. 이름은 '차낭사이'. 힌두교를 믿는 발리인들이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매일 바치는 제물이라고 한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아침엔 고이 놓여있던 것이 저녁에는 다양한 발걸음에 치여 흩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다음 날 아침이면 또다시 새로 장만한 치낭사이가 나와 있다.


신에게 매일 정성스러운 공양물을 바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마주치는 얼굴 얼굴마다 환히 미소 지어주는 발리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우붓에서의 첫 끼. 무슨 야채수프였던 것 같은데... 지나가다가 구글맵 평이 좋기에 들어갔는데 동 띄어진 계란의 노른자가 국 맛을 살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너무 피곤했던 탓에 숙소로 일찍 들어갔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에 풍덩 ! 어둑한 수영장에서 달빛을 마주하며 홀로 즐기는 수영이 환상적이었다. 수영장 있는 숙소를 잡길 잘했지. 체력을 보충하고 내일부턴 더 신나게 즐겨야지.


내일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만 남는 여행의 기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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