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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미 Jun 08. 2024

평안함과 헐떡거림을 동시에

DAY2. 요가의 이유는 사바아사나에 있다

 전날 밤, 낯선 잠자리에 뒤척이다 언제 잠 들었을까.


"굿 모닝!"


 누군가의 아침 인사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 보니 테라스 테이블 위에 잘 차려진 조식이 놓여 있었다. 어제 체크인을 하며 조식 체크리스트에 먹고 싶은 음식을 표기했는데, 그대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피곤함도 잊고 마음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남은 5일간의 아침 동안 미고랭 나시고랭까지 다 먹어 봐야지.

배를 채우곤, 그랩 바이크를 잡아타고 정글로 향했다. 우붓에 오면 꼭 해야 한다는 요가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요가원들은 보통 우붓 시내 외곽 쪽에 있었기 때문에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70도 가까이 되는 경사를 올라갈 땐 까딱하면 바이크에서 떨어지겠다는 생각에 손에 흥건히 땀이 고였지만, 기분만은 짜릿했다.

내가 고른 요가원은 바로 이곳 <INTUITIVE FLOW>. 우붓엔 크고 유명한 요가원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소규모라서였다. 대형 요가는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인원이 적으면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잘 봐주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수업을 등록했다. 수업 시작 약 15분 전 도착했음에도 등록하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금액은 인근 요가원보다 저렴했다.


원 데이 클래스 120K루피아 (한국돈 약 만 원)

발리 전통 가옥 2층에 위치한 요가원은 사방이 창문으로 탁 트여 있었다.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아만 있어도 수련이 되는 기분이었다. 높게 뻗은 나뭇가지 위로는 다람쥐가 돌아다녔는데, 동그란 두 눈이 매우 귀여웠다.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 두리번거리며 수업이 시작하길 기다리던 때, 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세요?"

"엇 네, 안녕하세요!"


 사실 자리에 앉으면서 나도 옆 사람을 보고 긴가민가 했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줘서 반갑고 고마웠다. 그렇게 초면이지만 반가운 한국인 언니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시작한 요가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만약 생전 처음 요가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따라가기 꽤 벅찼을 것이다. 그나마 몇 개월이라도 해본 경험 덕에 애써 따라가고 있으니 땀이 났다.  


그리고 그 땀 흘림은 모두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방의 창문으로 솔솔 바람이 들어와 땀을 식히고, 벌레와 새의 지저귐 소리가 들리는 한가운데에 누워 있으니 세상 모든 고민이 의미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요가를 수련하러 발리에 온 서양인이었는데, 타지의 정글에서 요가를 수련하는 삶을 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괜찮은 브런치 카페가 있는데 좀 걸어야 돼요."

"저 걷는 거 좋아해요! 가요, 가요."


요가를 마치곤 수련을 함께한 언니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의 골목골목이 비밀의 통로 같은 비주얼이라 무척 마음에 들었다.

초록 속에 고즈넉함만이 있는 동네. 우붓의 메인 스트릿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내가 상상하던 우붓의 모습에 좀 더 가깝달까. 언니는 더운 날씨에 날 오래 걷게 하는 것이 조금 미안한 눈치였지만, 정말 정말 괜찮다고 지금까지도 말해 주고 싶다. 오히려 이런 길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혼자였으면 요가 끝난 후 눈앞에 보이는 길만 무작정 따라 가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오리 무리도 볼 수 있고 말이지. 여행자밖에 없는, 혹은 아무도 없는 여행지의 거리를 걷다가 갑작스레 현지의 삶을 맞닥뜨리게 될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풍경에 젖어들었다는 착각 속에 빠졌다가 외부인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어서 그런 걸까?

도착한 카페는 기대만큼 좋았다. 사방이 뚫려 있는 구조에, 드러누울 수 있는 소파 좌석. 빈둥빈둥 시간 때우기가 하루 일과인 여행자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시킨 메뉴는 당연히, 역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더위에 지쳤을 땐 역시 아아가 최고다. 대나무 빨대가 귀여웠다.

내가 시킨 버거와 언니가 시킨 볼. 버거보단 볼이 더 맛있어서 메뉴 선택을 약간 후회했다.

언니는 서울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어쩐지 골목을 걷는 내내 해주는 설명이 귀를 사로잡더니! 발리 이곳저곳의 맛집과 요가원도 많이 소개해 주어서 구글맵에 고이 저장해 두었다.


언니는 이미 수 번째 발리에 여행을 와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또 오고 싶어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어서 다시 온 거라고 했다. 발리의 어떤 매력이 계속해서 언니를 끌어당기는 걸까? 이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카페에서 나와선,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언니의 길을 따라갔다. 숙소에 과일이나 사둘까 싶어서다. 나는 망고를 참 좋아한다. 동남아 여행을 갈 때면 1일 1망고를 목표로 삼곤 하는데, 2월의 발리는 망고철이 아니었다. 망고스틴으로 그 허전함을 대신 채웠지만, 달짝지근한 망고의 맛 완벽하게 대처할 순 없어서 아쉬웠다.

언니에게 예상 못한 선물을 받았다. 숙소 가서 맛있게 먹으라며 바나나를 포함한 여러 과일 세트를 건네주는 마음이 참 따뜻했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받은 대가 없는 선의는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어야지.


언니는 이제 곧 우붓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나도 갈까 말까 고민하던 지역이라 그곳에 가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그 지역엔 가지 못하게 되어 연락 또한 하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발리로 여행을 떠난다면, 잘 지내냐고 연락 한 통 남길 테다.

짧았던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다 마주친 강아지. 발리 거리의 개들은 보통 말라 있는데, 얘는 주인이 있는 아이인지 살이 아주 포동포동하다.

저녁은 미리 약속을 잡아뒀던 동행과 중식집에서 해결했다. 동행이 그사이 만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자리에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를 알아봤다.


"혹시, 내일모레 바투르 산 지프 투어 가시지 않아요?"

"헐 맞아요. 그걸 어떻게...?"

"저 같이 가기로 한 Y예요! 프사 사진 보고 알았어요."

"대박"


발리도 참 좁았다.

식사 후엔 그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라이브바에 들렀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우붓 최고 핫플이라는 <래핑 붓다>. 칵테일 한잔 하기는 좋았지만, 분위기와 음악은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웃고 있는 부처님의 상표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다.


바에서 나와 그냥 집에 가기가 또 아쉬워, 이번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그때 먹은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사진 분명 찍은 것 같은데, 왜 없을까.


일행과 아쉽게 작별을 고하고, 집에 혼자 돌아가던 길이 꽤나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문득 무서워져 앞서 가던 어느 여행객 커플의 뒤를 쫓아 졸졸 걸었다.


숙소까지 향하는 골목이 너무 깜깜해 뛰어가던 순간마저 지금 떠올리니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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