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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미 Jun 10. 2024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일을 하세요?

DAY3.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면 의지가 대쪽 같아야 한다

"굿 모닝!"


 굿모닝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기분은 꽤 경쾌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좋은 아침!" 외치기를 습관화해볼까 다짐하게 된다. 오늘 조식 메뉴는 나시고랭으로 골랐다. 아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정성스러운 과일 한 접시가 사랑스러웠다.

그랩 바이크를 잡아타고 꾸불꾸불 길을 넘어 향한 곳은 한 코워킹 카페. 발리가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라는데, 디지털 노마드 지망생으로서 코워킹하러 한 번은 가 봐야 하지 않겠나.

목적지로 택한 곳은 <Beluna - House of Creatives>. 구글맵으로 서치해 봤을 때, 초록 논이 펼쳐진 뷰와 '창작의 공간'이라는 카페명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곳이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끌린 여행자들이 많았는지 내부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탐나는 자리였지만 역시 이미 임자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테이블 조인을 제안하고 싶었으나 애써 차지한 자리를 누군가 그런 식으로 함께하고자 한다면 썩 유쾌하진 않을 것 같기에 그만뒀다. 대충 논이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국서부터 배낭에 이고 지고 챙겨 온 태블릿을 켰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많았다. 예컨대 귀여운 꼬리를 가진 고양이의 엉덩이라든가.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쿠션 위를 뒹구는 고양이라든가.

눈이 환해지는 초록빛 가득한 논의 모습이라든가, 논 옆에 난 샛길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는 여행자의 얼굴이라든가, 그리고, 그런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혹은 보여도 애써 유혹을 이겨내며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어느 디지털 노마드의 뒷모습이라든가.


태블릿만 쳐다보기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어떻게 이 모든 걸 못 본 척하며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 있는 건지, 쉽지 않은 길임을 직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목적이 있으면 가능할까? 혹은 데드라인이 있다면 가능할까? 그치, 마감은 모든 걸 해내게 하니까 가능할 수도.

디지털 노마드 체험판인 나는 그냥 밥이나 시켜 먹었다. 어젯밤부터 똠양꿍이 당기길래 주문했는데, 해산물이 똑 떨어졌다고 했다. 그 결과 닭고기와 버섯만이 가득한 똠양꿍을 먹게 되었지만, 맛은 있었다.

엉덩이 붙이고 있는 시간이 지겨워질 때쯤 노마드 체험을 종료하고 거리로 나섰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으니 큰길까지는 걸어가도 좋으리라. 옳은 판단이었는지 가는 길에 재밌는 풍경을 봤다. 어디선가 꽥꽥대는 소리가 크게 들려 둘러보니 오리 떼가 한바탕 출근 중이었다


"출근하기 싫어~"

포효 중일까

"맛난 거 먹으러 간다~"

환호성 중일까?


인간의 관점으로는 영영 알 수 없는 일이다.

걷다 보니 햇볕이 점점 따갑게 느껴졌다. 옆을 지나쳐 가며 그랩?을 외치는 기사들의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꿋꿋이 걸었다.

지쳐서 미소가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따라 웃을 수 있었던 스마일 그림. 발리에서는 왜 그렇게 계속 웃고 싶었을까?

덕분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메인 스트릿 도착!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밥을 먹으러 향했다. 마치 사원 같아 보이는 사진은 식당의 입구이다. 발리의 백반 요리인 '나시 짬뿌르'를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곳이었는데, 입구부터 위용이 느껴져서 믿음이 갔다.

내부의 모습은 조금 익숙한 듯 신선했는데, 마치 가평에 닭죽을 먹으러 온 것 같은 기분. 계곡물이 졸졸 흘러야 될 것 같은 분위기랄까. 신발까지 벗고 올라가니 가정집에 찾아와 밥 얻어먹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이 한상 차림이 바로 나시짬뿌르! 우리나라 한상 차림처럼 한 메뉴 안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식당마다 나오는 음식이 조금씩 다른 점도 나시짬뿌르를 먹는 묘미다. 이 집은 치킨 사테가 메인인 듯했는데, 전체적으로 간이 슴슴했다. 건강하게 배가 채워지는 기분이라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냥 보내버리긴 아쉬워, 완전히 어두운 색으로 덮일 때까지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우붓 거리를 헤맸다. 발리 우기의 아름다운 선셋이 얼마나 귀한 건지 이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선셋에 관련된 이야기는 후에 다시 풀도록 하겠다)

숙소로 귀가하기 아쉬워 벙개로 만난 동행들과 나시짬뿌르 식당 2차. 이곳의 메인은 닭다리였다. 먹는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되어 의도치 않게 분위기 있는 사진이 연출되고 말았다.

동행들이 나시짬뿌르를 먹는 동안 옆에서 디저트로 먹은 요거트 빙수(?). 정확한 메뉴명은 까먹고 말았지만 맛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첫 입은 굉장히 오묘한 맛이라 메뉴 선택을 후회했는데 어느새 바닥까지 싹 퍼먹고 있었다. 밍밍함과 달짝지근함의 합작품은 꽤나 중독성이 강했다.

숙소로 돌아오던 길, 길 한가운데를 차지해 버리곤 눈이 마주쳐도 미동 없던 고양이. 그리고 낯선 이의 발걸음에 깜짝 놀라 숨어버린 아기 고양이. 덕분에 잠들기 전 순간까지도 기분이 좋았다.


여행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순간까지도 특별하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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