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6: 란타우 섬, 빅토리아 피크
홍콩은 짧으면 2박 3일, 보통 3박 4일로 많이 오는 여행지이다. 여행지가 몰려있고 정해져 있기에 그다지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 볼만한 것들은 다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나는 한가롭게 5박 6일이나 머물기로 했기에 란터우 섬까지 가보기로 했다. 란터우 섬은 전 날 마카오를 가기 위한 출국심사장이 있던 곳으로, 어떻게 보면 갔던 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셈이다. 란터우 섬의 중심이 되는 통청역까지는 침사추이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이틀 전과는 다르게 아침에 바다를 건너니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기분이 들고, 작은 섬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홍콩, 마카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통청역도 역시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있었으나 한국보다 약간만 밀도가 높은 정도였고, 본섬과 홍콩반도에 비하면 제법 한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의 밝은 햇살과 동네 우거진 녹음이 기분 좋았다. 여기 란터우에는 10층 아파트 높이는 될 것 같은 매우 큰 불상과 포린사 (보련사)가 있다는데, 통청역에서 케이블카로 갈 수 있다기에, 탑승장에서 대기를 하였다.
케이블카 탑승장에 가보니 현지인들도 많고, 생각보다 한국인들도 많았다. 왠지 한국에서 프로모션을 하는 티켓이 있을 것 같아 잽싸게 구글링을 하였더니 예상대로 Klook에서 현지 구매하는 것보다 싸게 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줄 서는 틈에 구매를 하고 약 30분을 대기하였다.
통청역에서 바다와 산을 가로질러 케이블카를 약 20분을 탔다. 건물이 많이 없는 홍콩이 생경스러웠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높은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을 연결하려 길게 뻗어있는 도로가 조화로웠다. 지금까지 탔던 케이블카 중에서도 꽤나 높은 곳에 걸려 있는지라, 창문을 통해 바닥을 보았을 때 살짝 무섭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법 오랫동안 내려다보는 란터우 섬의 자연은 매우 아름다웠다.
도착지인 옹핑역에 가까워지니 꽤나 멀리서도 거대한 불상이 보였다. 옹핑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련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옹핑 빌리지를 통과하게 되는데, 관광지 앞의 마을이 으레 그렇듯이,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들, 그리고 음식점이 많았다. 그래도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것이, 가게들이 번잡하지 않고 깔끔하였으며, 벽면을 대개 아주 하얗게 칠해놓고 기와를 얹어놓아 마치 티베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가본 적은 없지만)
옹핑 빌리지를 통과하여 조금만 더 걸어가니, 일주문처럼 보이는 하얀 대문이 있고 보련사가 보였다. 황토색 기와 건물인 보련사 앞에는 큰 향로가 있고, 몇몇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곳 홍콩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절이나 사당 앞에는 으레 소원을 비는 커다란 향로가 있는 것 같다.
보련사 자체는 불상에 비하면 아주 크지는 않고, 속리산 법주사의 넓이와 비슷하고 건물 수도 비슷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보통 규모가 있는 절이면 중앙에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이 있고 조그마하게 삼성각을 지어놓는데, 이곳 보련사도 중앙에 대웅보전이 있고 옆에 작은 전각들이 있다는 점이 아주 흡사해 보였다. 절을 나오려고 보니 길에 연등이 빽빽하게 걸려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국어로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쓰여있었다. 한국의 연등이 어쩌다 이곳 란터우 섬까지 오게 되었을까.
보련사에서 나오니 거대한 불상이 눈에 띈다. 불상 자체도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도 산행인지라 지대가 높아, 서울에서 어디든 롯데타워가 보이는 것처럼 이곳 옹핑에서는 대불상이 어디서든 잘 보인다.
불상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계단을 세면서 오르진 않았으나 족히 10분은 넘게 걸렸다. 11월이라 홍콩이라도 아주 더운 날씨는 아니련만, 끝까지 올라가고 보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불상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에어컨이 있었다. 안쪽에는 불교 관련하여 이런저런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벽면에는 여러 사람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제사에 쓰는 것처럼 크게 나무로 하려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니 벽면에 타일처럼 다닥다닥 위패를 붙여놓았는데, 신기하게도 매염방의 위패가 여기 있었다. 다른 위패보다 크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으며, 매염방의 사진, 굿즈들이 위패 앞에 올려져 있었다. 꽃들도 몇 송이 있었는데, 아직도 팬들이 매염방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듯싶었다.
더위를 식히고 불상을 나와보니 높은 곳에 있어서 저 멀리 보련사가 잘 보였다. 그렇게 큰 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꽤나 높이 여러 층으로 올려져 있는 큰 절이었다. 통제된 부분이 있어 다 들어가 보지 못하여 아주 큰 절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선선한 바람맞으며 전망을 구경하다가, 계단을 내려왔다.
옹핑역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통청역으로 돌아왔다. 타이오라는 작은 어촌마을이 있다기에 페리선착장 쪽으로 15분 정도를 걸어갔다. 선착장에 작은 매점이 있어서 콜라를 한 캔 뽑고 선착장에서 느긋하게 타이오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선착장도 한산하고 홍콩에 있는 것보다는 약간 작았다. 대합실은 조용했고, 벽면에 오래된 선풍기만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착장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었는데, 이름만 페리인 작은 선박이 도착했다. 대략 30명 정도를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리를 타고 통청에서 멀어지니 인적이 아예 없어지고, 30분 정도가 지나니 작은 어촌마을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서 보이는 풍경은 수상가옥이었다. 마을 전체는 아니고 일부만이 수상가옥이었는데, 그 수상가옥도 일부는 육지에, 그리고 일종의 발코니 같은 부분만이 육지에 세워져 있었다. 아주 작은 어촌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10층쯤 되는 맨션도 몇 개 있었고, 2,3 층쯤 되는 작은 맨션들도 많았다. 노을이 막 지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운동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수상가옥들의 육지 부분 쪽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골목들이 있었고, 작은 상점가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음식과 간식을 파는 곳도 몇몇 보였으나, 건어물을 파는 곳이 많이 보였다. 마을은 작지만 현지인들과 적은 관광객들이 얽혀서 생각보단 상당히 활기가 있었다.
골목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번잡한 시장에서 빠져나와 섬의 외곽 쪽으로 빠지게 되는데, 이곳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맨션들이 많이 보였다.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하교를 하거나, 동네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은 시골로 가면 학생들을 보기가 힘든데, 이곳은 젊은 사람들, 나이 든 사람들이 고루고루 섞여서 마을이 좀 생기 넘쳐 보였다.
해안가를 쭉 따라가다 보니 섬 안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나온다. 인적도 드물뿐더러 등산까지 해야 하니 여기서 멈췄다. 섬 끝에서는 이미 해가 많이 지고 지평선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섬 끝에 오니 오르막에 갑작스레 작은 호텔이 나타나서 조용하게 타이오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다시 시장 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시장에 다다를 때는 이미 6시가 되어버려 시장의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페리를 타려고 선착장을 찾는데, 시장 골목이 너무 복잡하게 되어있고, 구글 지도가 정확하지 않아서 15분가량을 헤맸다. 배를 놓칠까 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시장을 지나다니는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내가 헤매고 있으니 아까 길을 물었던 할아버지가 급하게 오셔서 이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신다. 일본인들처럼 나긋나긋한 맛은 없고, 목소리는 컸지만, 내가 길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전해져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페리를 타고 통청역에 오니 거의 7시, 다시 홍콩섬 쪽으로 오니 8시가 되어있었다. 마지막 밤의 정점으로 빅토리아 피크의 야경을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아뿔싸… 카드에 충전도 안되어 있었고 동전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황하여 주머니에 동전이 더 없나 뒤져보는데, 옆에 아주머니가 감사하게도 공짜로 동전을 몇 개 주셨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얘기했다. 아까 길을 알려주신 할아버지도 그렇고, 이름 모를 이런 좋은 분들 덕분에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오니 왜 세계 3대 야경을 운운하는지 알 것 같았다. 피크에서 보이는 홍콩섬 쪽의 빌딩들과 침사추이 쪽의 빌딩들이 구룡만, 빅토리아 하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복잡하게 보이던 홍콩섬들의 빌딩들이 가지각색의 조명으로 켜져 있어서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크에 올라오니 신기하게도 고급 맨션들과 개인 저택들도 눈에 띄었다. 저 사람들은 매번 산으로 차를 몰고 올라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피크에서 내려갈 때는 피크트램을 탔다. 경사가 제법 있어서 내려갈 때보다 오히려 올라갈 때 탔으면 더 스릴 있었을 것 같았다. 산을 빙빙 둘러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쭉 내려가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시내 쪽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챙기고 귀국 전 마지막 만찬으로 원딤섬의 딤섬 몇 가지와 밥을 시켜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이제 공항에 가려고 까우룬통에 가서 공항버스를 기다렸는데, 굉장히 깔끔하고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몇 역만 더 내려가면 그토록 복잡하더니만, 이렇게 3,4층 밖에 안 되는 고급맨션과 넓은 개인주택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홍콩 첵랍콕 공항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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