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하늘 Mar 21. 2024

내 기억속의 집

허물려고 했을 땐 폐가였지만, 품었더니 멋진 집이 되었다.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다. 편한 복장으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식사하며 씻을 수도 있다. 집은 가족 단위로 거주하는 곳이다. 가족이란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가족 구성원이 의식주를 함께 하고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는 곳이다. 가족은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나누고 함께 울고 웃는 원초적인 관계이다. 그런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집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집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고 자란 나의 옛 시골집을 재작년 복원하고 나서 ‘율시헌(栗枾軒)이란 이름을 지었다. 집 마당엔 100년도 넘은 밤나무(栗)와 감나무(枾)가 있다. 그것과 추녀 혹은 집이란 의미가 있는 한자 헌(軒) 자를 따와 ‘율시헌’이라 한 것이다. 율시헌의 전신인 옛 시골집은 1971년 임자년, 아버지가 지은 70년대 스타일의 개량한옥이다. 근대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요즘으로 치면 아파트 베란다와 같은 테라스 공간도 있는 등 당시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지은 집이다.


율시헌이 있는 동네는 70년대 20여 가구가 있었는데 전부 초가집만 있었고 집 앞으로 대구~안동 간 도로가 낮게 있을 때는 차를 타고 지날 때 옛날 우리 집이 보였다고 한다. 97년에 교량 공사를 하고 도로를 높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근엔 마트 창고가 들어오고 예전 집을 허물고 신식 혹은 2층으로 전원주택이 한두 채 지어지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율시헌은 집과 집 사이로 잠깐 보이는 수준이 되었다. 도심의 문화재들이 높은 빌딩들 사이에 숨겨지듯, 나의 시골집 율시헌도 세월의 흐름에 주변 건물에 가려지게 되었다. 옛집, 고향 집, 시골집, 촌집 등 전부 비슷한 느낌이지만, 나에게 있어 율시헌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재작년 옛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적어본다.


2021년 2월 말부터 시작된 공사는 경칩, 춘분, 청명을 지나 한 달여 정도 흘러 4월이 되었다. 서까래와 기와를 새로 이었더니 집의 형태가 서서히 갖춰져 갔다. 중국의 양쯔강 강남에서 겨울을 보내고 매년 3월이면 한국으로 돌아오던 제비의 모습도 요즘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지구 온난화로 제비 같은 철새가 기온이나 계절 변화에 둔감해지면서 제때 서식지 이동을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6년간 사람이 떠난 집에는 더더욱 제비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마 밑을 보았더니 둥지를 튼 흔적조차 없었다. 어릴 적에는 제비의 똥이 바닥에 떨어지기에 신문을 받쳐 놓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조차도 그리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2021년 봄은 달랐다. 공사가 한창인 4월 초부터 처마 밑으로 제비가 저공비행이라도 하듯 들락날락하며, 논에서 지푸라기를 물고 와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다. 마치 사람의 정을 느끼러 온 것처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16년간 강남 갔던 제비가 찾아오지 않다가 집수리를 할 때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마당을 100년 이상 지키고 있던 감나무와 밤나무도 새싹을 틔우고 잎이 점점 자랐다. 따뜻한 봄바람에 갓난아기 손 같은 잎은 누가 더 색이 짙은 지, 서로에게 이야기라도 하듯 마주 보며 흔들리고 있었다. 초록색의 잡초가 무성했던 마당이 정리되니 연두색의 두 나무의 잎은 더더욱 짙게 보였고 주인공이 된 듯하였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漢詩(한시) 한 수가 생각났다. 예전에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할 때를 생각하며, 여러 가지 단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생각했다. 한시 전문가나 안동 도산서원에서 매년 열리는 도산별시의 심사위원이 보면 빵점짜리 詩(시)겠지만 평측, 압운, 어순, 성조 등의 엄격한 법칙을 정말 무시하고 율시헌과 두 아들을 생각하며, 칠언절구 형식으로 적었다. 


古宅在燕復不來 (고택재연복불래)

椽瓦更時西燕歸 (연와갱시서연귀) 

栗枾相見靑葉濃 (율시상견청엽농)

兄弟同望友愛厚 (형제동망우애후)


낡은 집은 그대로인데, 제비는 돌아오지 않네

서까래와 기와를 고칠 즈음 서쪽에서 제비가 돌아오네

밤나무와 감나무는 서로 마주 보며 푸른 잎이 짙어지듯

형제끼리 같은 곳을 바라보며 우애가 두터워지길


밤나무, 감나무가 100년을 서로 마주 보며 율시헌을 묵묵히 지키고 서로를 의지한 것을 적었다. 나의 두 아들 도유, 재하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의 좋은 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율시헌은 제비가 돌아오면서 멋진 이야깃거리가 생겼고, 어릴 적 제비 똥을 치우기 위해 신문을 깔아놓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현재의 나. 새끼를 위해 먹이를 쉼 없이 잡아 나르는 부모 제비처럼 ‘나의 부모님도 나를 위해 똑같이 했겠지?’ 하고 생각하니 우리 아들을 위해 나도 열심히 일도 하고, 캥거루족이 아닌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열심히 키워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고 맹세한다. 


그렇게 날아온 제비들과 따뜻한 봄날 주변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잎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듯 율시헌 역시 새 옷을 갈아입으며, 점점 변화되는 걸 느꼈다. 나 또한, 16년간 끊어진 율시헌의 시간의 켜를 이으려 노력하고 있다. 제비는 흥부 놀부 속에 등장하는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새이다. 그런 제비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추억이라는 박 씨를 선물하고 싶다. 율시헌 자체가 내 인생이 받은 귀중한 선물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흑역사와 같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앞으로 율시헌에서 단순히 나의 이야기가 아닌 “이 집과 나와 손님"에 대한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