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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pr 21. 2024

시칠리아 카타니아 도보 여행 1편

이오니아해와 접하는 항구도시


카타니아 셀프 도보 여행


베개에 얼룩이 번진 것인지 마음에 멍이 든 것인지 모르는 시칠리아 카타니아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행할 수 있을까. 시칠리아는 휴양도시라고 하면 휴양도시인데, 또 뿌리 깊은 역사와 거부할 수 없는 시칠리아인들의 삶이 있는 여행지라 본인의 취향에 맞게 여행을 설계하면 될 것이다. 단, 진정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여행인지 생각해야 한다.


험악한 골목길에서 시작된 감정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썼다. 모래색깔의 벽돌집하며 짙은 회색의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깡통들. 재미난 풍경에도 마음이 아팠다. 혼자 여행했더라면 눈물은 감췄을까. ‘물리노 벤토’ 거리에서 느껴지는 시칠리안인들의 생기와 아름다움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카타니아’는 기원전 8세기 경 그리스 정착민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또 제1차 포에니 전쟁 동안 로마의 도시였다.
우르시노 성 외곽

오전 10시경, <우르시노 성(Ursino Castle)>에 도착했다. 13세기 시칠리아 왕국의 왕성으로 만들어진 ‘중세 요새’이다. 자연재해와 속절없는 시간을 견뎌낸 '카스텔로 우르시노(Castello Ursino)'. 거대한 벽을 보고 사진만 찍었다. 내부에는 카타니아 시립 박물관이 있는데, ‘무기, 조각품, 그림’ 등 역사 컬렉션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속이 상해 망부석처럼 서있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다 못해 다른 천상계의 노랫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카타니아 주민들은 하나같이 어디 숨어 있다 나온 듯 바람에 흩날리는 이불보를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지나가는 동양인 두 명에 인사를 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즐기며 노래하는 광경은 평범한 일상으로 치부되지만 그 일상마저 그리웠다.


남편이 찍어준 나의 뒷모습

( 남편은 구멍가게에 들러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참, 그건 마음에 들어!’ 같은 취미로 함께 한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지만 부부사이에 성격차이는 끝도 없는 평행선이다. 서로 존중과 포용력을 길러서 더 좋은 더 나은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


로마극장과 과거 대기실로 이용되던 공간
단체 방문이 많은 로마극장

오전 11시경, <로마극장 Roman Odeon>에 왔다. 지나가던 선량한 소녀가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도와줬다. ‘카타니아의 로만 오데온’은 고대 카타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다. 고대 로마 건축물로 용암암과 벽돌, 대리석을 사용했다. 응어리진 가슴 한켠을 뻥하고 뚫어주는 [반원형의 오케스트라]. 객석과 무대 사이를 둥글게 만들었고 1,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구조로 지어졌다. 오늘날에도 공연을 해도 될 만큼 건재하다. 차가운 돌에 앉아 박수를 치니 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수십 계단을 지나 1960년대 복원된 오데온의 일부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놀라웠던 사실은 그 방 중 하나가 바로 대기실로 사용된 곳이었다. 어느 오페라 가수가 객석에 가득 찬 관객을 위해 무한정 연습하고 준비하던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는 환생했을까?


카타니아가 재밌어졌다. 그래서 마음이 서서히 풀어졌다. 다음 도보 여행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신이 나서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사진을 요청했다. 글루미한 블루빛을 한 하늘에 핀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찰나를 놓칠 수 없었다.


기원전 300년 전의 로마원형극장

오후가 시작될 때쯤, <로마원형극장 Roman Amphitheatre of Catania>에 다다랐고 주변의 소음으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원형 교차로이자 로터리에 떡하니 자리 잡은 ‘로마원형극장’이 생경했다. ‘뛰뛰빵빵’ 소리는 트럼펫 소리로 들리면서 기원전 3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최대 7천 여 명을 수용한 경기장을 배회하는 것은 카타니아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다.

로터리에 있어 생경한 로마원형극장의 모습




TV 프로그램 ‘톡파원 25시’에서 소개했던 ‘아란치노’를 먹을 시간이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무조건 ‘아란치노’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Pasticceria Savia'에서 먹는 <아란치노>여야 한다.


너무 능동적이면 상대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능동적인 인간도 보살핌과 배려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0.00001mm의 종잇장처럼 펄럭이는 상처들이 콕콕 박혀서 날이 선 말들을 내뱉게 된다.

어김없이 내가 주문하고 남편은 기다린다. 점심시간이라 시칠리아인들이 바글바글하다. 한국인으로서 이탈리아어도 못하고 시칠리아어는 더욱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통한다.


 ‘시칠리아는 영원히 시칠리아다.’

콩과 밥을 섞어 빵가루를 입혀 튀긴 시칠리아 전통 음식인데, 대부분은 이탈리아 요리로 알고 있다. 파스타의 기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의 근원지가 바로 시칠리아다. 그런 시칠리아에서 먹는 아란치노 최고의 맛집은 메뉴도 다양했다.


카운터에서 먼저 결제 후, 아란치노와 피자 등을 고이 모셔둔 가판대에서 영수증을 보여주면 되는데 그 영수증이 문제였다. 영수증에는 그저 ‘아란치노 2개’만 적혀 있을 뿐. 어떤 종류의 아란치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얀 빵모자를 쓴 파티셰 아저씨가 가지런히 놓인 아란치노를 고르라고 손짓하는데, 순간 다른 세계에 갔다 온 것 같다.


성격 급한 아주머니께서 가장 맛있는 2개를 대신 골라주셨다. 연신 고개를 숙여 화답했는데 그녀의 방긋 웃는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는 시칠리아 아줌마가 아직도 생각난다.   


벨리니 정원에서 먹는 아란치노는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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