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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띵워킹 May 14. 2024

퇴사 후에 오래도록 남는 것

작은 챙김, 소소한 이벤트,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5년 8개월의 회사생활이 끝났다.

출근 마지막 날 함께했던 동료들로부터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그동안 회사에서 소소하게 특별한 순간이 있을 때마다 찍었던 우리 사진들의 꼴라쥬 액자와 환한 앞날을 기원하는 예쁜 인테리어 조명.


사진 너무 많아서 고르느라 힘들었어요!

라고 농담을 던지는 동료들에게서 선물을 건네받곤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사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때 생각이 나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그게 벌써 10일 전이다. 여전히 이 액자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떠올려보자. ‘그 팀 어때?’라는 질문에 우리는 주로 무엇을 기준으로 답하게 되는지.

우리는 팀에서의 경험을 반추할 때 ‘사람과 분위기’를 떠올리며 답한다. 물론 일을 많이 배울 수 있고,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조직인지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역시 ‘누구와 함께인지’에 거의 모든 영향을 받는다.


내가 겪은 두 번째 직장에서의 우리 팀은 내가 만난 팀 중 가장 ‘스마트하고 따뜻한 팀’이었다. 그걸 완성하는 건 결국 ‘좋은 동료들’이었다.

실제로 면접 과정에서도, 이직을 하게 된다면 가장 아쉬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료들’이라고 답했었다. 지금 동료들이 너무 좋은데, 새로운 곳의 동료들이 어떨지는 미지의 영역이라 조금의 두려움도 있다고.


이 글에서는 나의 동료들이 어떻게 그 ‘따뜻함’을 완성해 가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결국엔 그 따뜻함으로 인해 그 회사를 떠난 후에도 그 회사가 꼭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기분을 스스로도 오래 간직하고, 앞으로 새롭게 맞이할 국면에서도 잊지 않고자 정리해 본다.


퇴사 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내 월급이나 성과급이 얼마였는지 보다는 동료들로 인해 만들어졌던 우리 팀의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이다. 동료들과 있었던 배꼽 잡는 에피소드, 시시콜콜한 농담들, 내 인생 중요한 순간들을 축하해 주던 말들, 힘듦을 견디게 위로해 주던 눈길 같은 것들 말이다.

나의 동료들은 이런 따뜻함을 어떻게 만들었었을까?


때 되면 잊지 않는

작더라도 감동적인 챙김

우리 조직은 그야말로 ‘잡담’이 넘치는 곳이었다. 이벤트도 많았고,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서로의 많은 것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을 바탕으로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마치 모두가 ‘맞춤형 관심과 배려‘에 능한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은 배려받을 수 있었고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은 축하받을 수 있었다. 신규 입사자들에겐 웰컴 페이퍼를, 생일인 사람들에겐 책상 꾸미기를, 생일 주인공을 웃게 하는 포인트를 담아 생일 파티를 손수 준비했다.

각자의 책상 데코 아이템들을 생일자에게 몰아주는 것만으로도 환대 분위기가 물씬!



성인 되고 받은 축하 중 가장 요란스러운 생일 축하 파티

신입사원의 졸업식엔 케이크와 꽃을, 누군가의 자녀의 돌엔 돌반지 선물을, 코로나 걸린 직원에게 간식 배달을. 받는 것만으로 감동인 챙김으로 5년 반동안 따스함을 이래저래 참 많이 느꼈다.



온갖 이벤트 즐기고

그 순간을 남기기

우리 회사는 이벤트가 많은 회사다. 내가 속한 부서가 교육과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부서다 보니 그 이벤트들의 주관 부서일 때도 많지만 아닐 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설렘과 기대로 참여하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잘 남긴다.


회사 할로윈 코스프레 파티 땐 서로의 분장을 보고 낄낄거리고 사진을 남기기 바빴다. (초상권 때문에 사진을 다 오픈하지 못해서 아쉽다...!) 사내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딸의 앨리스 착장을 보겠다며 함께 하원하러 간 동료들이, 딸아이에게 눈을 맞추려고 모두 쪼그려 앉은 뒷모습을 본 순간은 아마 인생 오래도록 잊지 못할 고마움일 것이다.

업무적으로 하는 큰 행사들에서도 서로를 기록해 주고, 누군가 새로운 일을 처음으로 맡게 됐을 땐 그 모습을 잘 남겨주었다. “멋있다, 파이팅,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남겨진 사진들이 카카오톡 대화창에, 업무 메신저 대화창에 가득하다. 흩어질만한 느낌이나 감정들도 그 기록들로 인해 오래 남아있다.

일을 하려고 모인 곳이니 성과를 만드는 것이 당연히 가장 중요하지만 이런 순간들로 활력을 만드는 것 역시 너무 중요하다.


다들 알지만 쉽게 잊는다. 너무 바빠 일에 치일 땐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은 후순위로 미뤄 버린다. 그런 우선순위가 쌓여 조직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나는 이런 순간에서 리더가 참 ‘가장’ 같다고 느낀다. 아무리 바쁘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아이의 소풍, 친구들과의 만남, 작은 선물, 다정한 말을 챙기는 가장이 있다. 한편으론 바쁘다는 걸 방패 삼아, 혹은 후일의 더 큰 행복을 위해 견딘다는 마음을 방패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는 꼭 큰 행복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의 작은 행복과 값싼 기쁨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 <눈뜨면 없어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섯 살 때였나 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사실 구성원들도 비슷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나 리더에게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건 부담이다.

응원의 카톡이나 쪽지, 중요한 날을 잊지 않고 건네는 말 한마디, 날 좋을 때 산책이나 점심 피크닉을 가는 즐거운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동료들이랑 떠난 점심 피크닉! 판교 벚꽃 아주 예쁩니다...!

이런 작은 챙김에 감동받게 되는 이유는, 이런 작은 챙김이 상대를 향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소한 이벤트들을 해내기 위해선 상대를 향한 호기심과 관심이 필수다. 대단한 여력을 내야 한다기보단 오히려 습관에 가깝다.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에 많아질수록 팀 분위기는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바뀌어가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만듦에 있어, 그리고 내 인생 전체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를 잊지 않으려 마음에 새겨두는 말들이 있다.


“비관은 기분이고 낙관은 의지다.” -알랭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일해야 한다면 그 시간을 유쾌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래야 인생 전체도 즐거워질 테니깐.“ - <프리워커스>


일 년에 몇 번 안 찾아오는 중요한 날을 까먹지 않고 소소하게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각자 지나가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이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기억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한 장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동료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팀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다.


Well doing on Well being

아마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회사에 놀러 왔어?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안 바쁜가 봐??


회사는 일을 하러 모인 곳이지만 일만 하려고 모인 곳일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회사에서의 만족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두 개의 축이 있다면 그건 [성과]와 [행복]이다. 이를 두 개의 축으로 삼아 사분면을 만들어보면 이렇게 된다.


우리 팀은 어느 사분면에 있는지, 이 팀에 머물고 싶어 하는 구성원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조직에서의 행복이 왜 중요한 지 아주 쉽게 알게 된다.


1. 성과⬆️ 행복⬇️

 : 일에 탈진된 구성원들이 쌓인다

2. 성과⬇️ 행복⬇️

 : 조직 전체적으로 침체되고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 성과⬇️ 행복⬆️

: 일에 대한 고민 없이 회사를 동아리처럼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4. 성과⬆️ 행복⬆️

: 일의 의미와 재미,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는 구성원들이 몰린다


조직에서 ‘성과와 행복’은 꽤 자주 두 마리 토끼에 비유된다. 동시에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들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성과와 행복은 하나를 얻으면 다른 건 얻을 수 없는 대척점에 있지 않다. 원으로 치자면 같은 중심을 향해 출발한 조금 다른 곳에 위치한 두 가지일 뿐이다. 성과와 행복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원의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사이도 가까워지고 서로의 성장을 원해 시너지를 내기에도 좋은 것 아닐까.

.

동아리원도 좀비도 노예도 서로를 성장시켜 주기엔 한계가 있다.

1️⃣ 우리가 모여 일하는 이유를 잊고(성과 없이 즐겁기만 동아리원)

2️⃣ 서로를 갉아먹기만 하고 (성과도 없고 행복도 못 주는 좀비)

3️⃣ 그저 일만 하는데 (일의 의미와 재미를 잊은 노예)

서로를 지속 가능하게 해 줄 리가 없다. 본인의 지속가능성도 찾기 어렵다.

.

그래서 둘 다, 정말 둘 다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팀의 리더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

”좋은 포트폴리오, 이력서 완성시켜 줄 테니 행복은 사치다.“

“우린 적어도 지옥은 아니잖아. 편하게 시간 때우다 가.” 식의 말과 행동은 우리 팀을 갉아먹을 뿐이다.

둘 다 이뤄내지 못해 자기 위안을 삼는 건 아닐까.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는 '보스가 나의 일을 제대로 알아주는 회사' 이거나 '보스가 나의 행복을 제대로 생각해 주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 - <이와타 씨에게 묻다>



'Well doing on Well being'

잘 지내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를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옆자리 동료가 오늘 어떤 기분인지, 중요한 날인지, 혹시 내가 힘이 되어줘야 할 날인지를 살뜰히 살피고 소소한 이벤트를 선물해 줄 수 있는 좋은 동료가 되면 좋겠다. (나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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