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늦은 밤 홀로 차를 우리며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가 식어 버릴 때가 왕왕 있다. 특히나 추운 겨울에는 차가 금방이고 식어 버리기도 한다.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하며 출진했던 삼국지의 관운장이 얼마나 빨리 돌아왔는지 상상하며 혼자 피식 거리기도 해본다.
이렇게 식은 차들은 못내 아쉽지만, 또 식은 차는 그 나름의 색다른 향취를 느끼게 해 줄 때가 있는 듯하다.
백차의 경우 뜨뜨 미지근 한 정도에서는 특유의 알싸하고 달큼한 향이 좀 더 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홍차도 마찬가지로 살짝 식은 정도가 훨씬 맛이 달콤해지고 향기로워지는 듯하다. 녹차의 경우는 뜨거울 때는 쌉쌀한 맛이 조금 감도는 느낌인데, 살짝 식으면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반면 숙차의 경우는 뜨거울 때가 제일 구수하고 깊은 맛을 느끼기 좋은 듯하며, 식으면 향 맛도 옅어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감상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고, 또 일반적으로 온도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미각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는 있지만, 왠지 온도에 따라 차의 맛 역시 달라지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만 따지자면 차의 온도뿐만 아니라, 체온이나 그날의 기분, 기후, 습도 등등 얼마나 많은 요인들이 있겠냐 만은, 이러한 것들을 매일 확인하면서 차를 즐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차는 더 이상 '쉼'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차의 온도에 따른 차맛의 변화 역시 이것저것 찾아볼까 하다가, 부러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저는 온도에 따른 차맛의 변화를 이렇게 느꼈습니다.'라는 '아니면 말고'식의 감상 정도로 충분할 것 같다. 만약 '온도가 낮아지면 차는 써집니다'라고 누군가가 과학적인 정답이나 정의를 내게 알려준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달다고 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그저 내 미각이 고장 났나? 같은 생각으로 내 머릿속만 더욱 어지러워질 뿐일 것 같다.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뭐 하나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지게 되는 것 같다. 온갖 문서화된 것들을 뒤져 보고, 비슷한 경험담이나 사례들을 뒤져보기도 하며, 이것저것 끼워 맞춰 단정 짓고는 머릿속에 욱여넣어 놓기도 한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고,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답이 쓰다고 한들, 혹은 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내가 달콤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달콤한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을 지식화 하여 머릿속에 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느끼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식은 차는 보다 더 달콤하고 향긋한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얼른 추운 계절이 지나고, 보다 따뜻한 계절이 와서 시원하게 얼음도 좀 띄워서 차를 마셔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