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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ul 22. 2024

이슬람의 올바른 이해 06

이슬람에 관한 오해와 진실

표지 사진: Taking of Jerusalem by the Crusaders(1847) by Emile Signol / 출처: Wikipedia, <Siege of Jerusalem (1099)>





제 3 장  이슬람 지하드에 관한 오해와 진실 01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나타내는 예로 흔히 인용되는 ‘한 손에는 꾸란, 한손에는 칼’이라는 문구는 익히 알려진 대로 무슬림이 한 말이 아니다. 꾸란을 비롯한 어느 이슬람 경전에서도 이 구절을 찾아 볼 수 없다. 이 구절은 일설에 따르면 13세기 후반 십자군이 무슬림 군대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로 알려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이슬람교의 폭력성을 대변하는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지하드(Jihad)인데, 지하드만큼 깊은 오해를 사고 있는 이슬람 교리는 달리 없을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들이 공공연히 지하드를 내세워 테러를 자행하는 바람에 지하드는 살육과 파괴를 부추기는 교리로 오인 받고 있다. 


보통 지하드를 성전(聖戰)으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성전(holy war)이라는 표현은 클레르몽 종교회의(Council of Clermont, 1095년 11월 18일 ~ 11월 28일) 석상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1035~1099)가 유럽의 군주들에게 예루살렘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 원정을 단행할 것을 호소할 때 처음으로 사용했다.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성전(聖戰, holy war)을 촉구하는 교황 우르바노 2세 / 출처: 위키백과, <클레르몽 공의회>


이슬람교에서는 성전이라는 표현 자체를 쓰지 않는다. 지하드는 아랍어로 ‘애쓰다 혹은 노력하다’라는 뜻으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고심분투(苦心奮鬪)를 가리킨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무슬림의 중요한 종교적 의무 중에 하나로 간주된다. 


일부 무슬림들은 지하드가 이슬람의 여섯 번째 기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크하리지(Khariji)파 무슬림은 지하드를 이바다에 포함시켜 이슬람 교리가 6柱와 6信으로 이뤄져있다고 주장한다. 


지하드는 대(大)지하드와 소(小)지하드로 나뉜다. 대지하드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정신 수양을 의미한다. 각종 유혹을 견뎌내고 악을 배척하며 신앙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무슬림이 종교적 의무라 여기는 지하드는 대개 대지하드를 가리킨다. 


소지하드는 무슬림이 힘을 합쳐 공동체를 이뤄 외부의 적으로부터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직접 무기를 들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소지하드 중에서도 가장 하위의 개념이다. 지하드는 순전히 방어적 개념이기 때문에 남을 먼저 공격하는 테러행위는 결코 지하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지하드는 신성한 신앙생활의 일부이므로 복수심이나 증오심을 품고 저지른 행위 역시 지하드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 측에서는 이슬람교가 전쟁과 정복을 통해 전파되었음을 지적하며 이슬람은 전쟁의 영(靈)을 지닌 종교라고 주장한다. 정복전쟁을 통해 이슬람의 세력이 급속히 확장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슬람이 호전적인 종교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여러 전쟁사가(戰爭史家)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슬람권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호전적이거나 더 많은 전쟁을 도발했다는 역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의 전쟁 양상이 특별히 더 잔인했다는 근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꾸란은 침략에 맞서는 방어적 성격의 전쟁(이를 꾸란에서는 ‘지하드’라고 표현했다.) 이외의 다른 모든 전쟁을 죄악(sin)으로 규정하고 있다.(출처: 이춘근, <<전쟁과 국제정치>>, 북앤피플, 2020. P.195~196) 


전쟁은 역사적으로 문화전파의 주된 매개 역할을 해왔다. 제지술(製紙術)이 서양에 전파된 것 역시 751년 압바스 왕조(Abbasid Caliphate, 750~1258)와 중국 당나라(唐, 618~907)가 맞붙은 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 751년 7월 ~ 8월)를 통해서였다. 


이슬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대부분이 전쟁을 통해 전파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불살생(不殺生)을 주요 교리로 채택하고 있는 불교 정도일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가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역사상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 많은 살육을 자행한 종교가 다름 아닌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야말로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독교가 세계 제1의 종교가 된 것은 근세 이후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확장 덕분이었다. 스페인의 피사로(Francisco Pizarro González, 1478~1541)나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1547) 같은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저지른 대학살은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왼편: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초상, 오른편: 에르난 코르테스의 초상 / 출처: 위키백과,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


이들은 기독교도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잉카와 아즈텍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당시 원주민 학살이 어찌나 극심했는지 카리브 해를 향해하는 선원들 사이에서 ‘서인도 제도에서 남미 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찾고 싶거든 바다 위에 떠있는 인디오들의 시체를 따라가면 된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유럽 백인들이 퍼뜨린 각종 전염병으로 인디오들이 무더기로 죽어가자, 스페인 정복자들은 ‘신이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땅을 청소해주셨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과 점령 과정에서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의 총수는 대략 8천만 명에서 1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원자폭탄을 비롯한 각종 현대 무기가 총동원된 인류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보다도 많은 수치이다. 


유럽 정복자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묘사한 그림 / 출처: 이본영, '유럽인들의 아메리카인 대학살이 기후변화 초래', <한겨레 신문>, 2019-10-19




<제 3 장  이슬람 지하드에 관한 오해와 진실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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